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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 바로크 음악의 걸작을 따라서 떠나는 여행
에릭 시블린 지음, 정지현 옮김, 장혜리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바흐의 사라진 악보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을 읽기 전에, 바흐의 초상화를 먼저 찾아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바흐의 엄하고 진지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하얀 가발을 쓰고 손에 '카논' 악보를 들고 있는 하우스만이 그린 초상화말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배우고 외웠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초상화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재구성하듯, 잘 알려지지 않은 바흐의 이야기를 추적함으로써 바흐의 음악을 재해석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셰익스피어를 제외하고 근대 예술 속에 우뚝 서 있는 거장이면서도 개인적으로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 유일한 인물"(30)이라고 하니, 바흐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새롭게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바흐를 "고루한 늙은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딱딱한 모습으로 그려진 초상화 때문이라고 합하며, 실제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실제 바흐는 열정이 엄치는 성격에 한 바수니스트와 칼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어느 공작의 감옥에 갇힌 적도 있으며 적어도 20명의 자식을 두었다"(27). 마치 묵직하게만 느껴졌던 첼로의 선율이 열정 넘치는 선율로 바뀌는 듯한 순간입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배운 것 말고, '바흐'라는 작곡가에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악보에 남아 있다는 그의 사인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바흐는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 악보 상단에 라틴어 "J. J"(Jesus, Juva. 예수여, 도와주소서)를 표기하고,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는 악보 마지막 쪽 하단에 "S.D.G."(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라는 표기를 남기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흐라는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대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를 알고 나니 그의 음악이 새롭게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는 여기에 전혀 새로운 이미지 하나를 덧입혀 주었습니다. "바흐는 여행을 할 때면 가장 좋은 호텔에 묵으면서 질 좋은 맥주와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고 합니다. "바흐가 탐닉적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질 좋은 것들을 즐겼지요"(30). 소설이나 그림과 달리, 음악은 작곡가를 잘아야 그 음악이 더 잘 들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리고 바흐를 통해 처음으로 음악가를 알면 그 사람의 음악이 더 잘 들린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는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막내였고, 어려서부터 음악에 둘러싸여 자랐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 책은 목적은 바흐의 생애를 추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의 어느 가을 저녁, 순전히 우연히 바흐의 <무만주 첼로 모음곡>의 연주를 듣게 된 저자는 거기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바흐의 자필 악보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곧 이런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흐의 매뉴스크립트, 즉 손으로 그린 원본 악보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수많은 칸타타, 협주곡, 솔로 바이올린곡들 등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남은 바흐의 서명이 담긴 원본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때, 여기에 무엇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에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또 한 가지 궁금증이 보태집니다. "당시 낮게 웅웅 소리를 내며 주류 악기들을 뒤에서 받쳐주는 정도로 천대받던 첼로를 위해 바흐가 이렇게 엄청난 곡을 만들 이유가 있었을까?"(16) 이 책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바흐의 사라진 악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된 것이지요.
(스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바흐의 사라진 악보를 찾아 저자는 "스페인뿐 아니라, 벨기에, 프랑스, 결국 독일까지 가게 되었지만 그 자취가 식어버린 지 오래된 경우가 허다"합니다(162). 조금 김빠지는 이야기를 하자면, 이 책이 마무리될 때까지 결국 바흐가 직접 쓴 원본은 '아직' 흔적조차 없습니다. "바흐의 원본 악보는 산성 성분이 강한 당시의 걸넷 잉크로 쓰여져서 서서히 손상되어가고 있다"(336)는 사실이 안타까움을 더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꼭 어디선가 갑자기 과거와 이어져 살아 숨 쉬는 연결 고리가 나타날 것 같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은 채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저자는 "음을 연결시켜보면 이야기가 나타날 것"(22)이라고 말합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는 바흐의 곡을 글로 연주하듯이 쓰여졌습니다. "거버너 제너럴 문학상과 작가 트러스트 논픽션상,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논픽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으며 지금까지 10개 국가에서 7개 언어로 번역돼 출판"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음악을, 바흐의 음악을, 첼로를, 바흐의 첼로곡을 잘 아는 독자들에게는 깊은 공명을 일으키는 새로운 접근,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것은 바흐의 음악을 크게 바뀌어놓을 만한 시도이기도 하다는 데 의의가 있어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흐의 미스터리에 관한 자료가 더 나오고 음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면서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서 흘러 나오는 이야기는 크게 바뀔 것이다"(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