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생>에 보면 김대리가 그 나이를 먹도록 쌓아놓은 스펙 하나 없는 장그래에게 "그래! 참 보기 드문 청년일세"라고 놀리듯 놀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제 스스로 '요즘 참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친구들 학원 다닐 때 저는 무엇을 했는지 이렇다 할 특기 하나가 없고, 남들은 하나쯤 다 다룰 줄 안다는 악기 하나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없으니 말입니다. 엄마는 학교가 끝나면 냅다 현관에 가방을 던져놓고 그대로 뛰어나가 해가 질 때까지 동네를 뛰어다니며 노는 저를 잡을 수가 없어 학원에 못 보냈다고 하시는데, 악기 하나쯤은 억지로라도 배워두었으면 좋았을 걸이란 후회를 많이 합니다. (핑계 같지만) 나이가 들어서 배우려니 훨씬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아노 독학에 도전해본 적도 있고, 교회 반주자에게 드럼 기초도 잠깐 배운 적이 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끝까지 실력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피아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누가 버린다는 덩치 큰 구형 전자피아노도 주워다 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제일 쉬운 피아노 레슨"이라는 이 책이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요.
<내 생애 한 번은 피아노 연주하기>는 하루에 45분씩 투자하면 단 6주 만에 제바스티안 바흐의 명곡 '프렐류드 1번'을 연주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책입니다. 독학을 위한 피아노 교본인가 싶었는데, 차가운 교본보다는 따뜻한 개인 레슨에 더 가까운 '책'입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피아노 치는 즐거움과 끈기 있게 기초를 익힐 수 있도록 일깨워주는데, 특히 '음악교육'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악기를 배우면 절제력, 자신감, 집중력, 문제해결능력, 언어능력, 문학·수학 능력뿐 아니라 개인적인 행복감도 높아진다"(11)는 최근 연구 결과를 전하며 저자는 '음악교육'에 대한 이렇게 피력합니다. "사실 이 책은 애초에 쓰일 필요가 없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가 이 책에 나온 것 같은 곡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하고 당연히 배워야만 하죠. 하지만 진보 정부들이 음악교육을 계속해서 축소해나갔고 결국에는 위기가 온 겁니다. 음악교육을 부활시키기 위한 대책을 이제는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12). 우리도 그저 특기 하나쯤으로, 그것도 사교육으로 악기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한 교육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음악교육을 다시 재고해보았으면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피아노 레슨"에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 꾸준한 노력을 건너뛰고 단기 속성으로 피아노 명곡을 연습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오히려 그런 욕심을 내려놓게 만듭니다. 이제껏 봐왔던 피아노 독학 교재보다 훨씬 간단하게 기초를 가르쳐주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 '기초'를 정말 잘 다져놔야겠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도레미파솔라시도'로 외우고 있던 피아노 건반의 자리를 다시 'CDEFGABC'라는 이름에 익숙해지도록 연습 중입니다. 줄음표, 칸음표 따라 손가락 연습도 하고요.
<내 생애 한 번은 피아노 연주하기>는 피아노 연주와 음악을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알고 나서 바흐의 '프렐류드 1번'을 시간이 날 때마다 감상하고 있는데, "장엄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간결하고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37)이라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음악과 사랑에 빠지기 좋은 계절, 피아노 레슨 교재나 독학 교재를 찾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