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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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엔 내가 어렸을 적 절벽에서 스완 다이브를 하고 사막에서 그림을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낭독하던 시절의 엄마로 보였다. ... 그런 엄마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뉴욕에서 수천 명에 달하는 노숙자 중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14).

심리학은 우리의 성격, 삶의 태도 등이 대부분 어린 시절에 형성되며 그 책임(책임이라기보다 영향력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이 양육자, 그러니까 (대부분의 경우) '부모'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모에게 어떻게 양육받느냐에 따라 아이의 성격, 삶의 태도 등이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하지만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어린 시절의 경험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내 인생의 '키'는 처음부터 내 손에 쥐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내 인생의 키가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더 글라스 캐슬>은 유명 칼럼니스트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저자가 자신의 '특별했던' 어린 시절을 고백한 책입니다. 엄마는 "꽃샘추위를 막으려고 목에 누더기를 둘둘 감아 묶고서 쓰레기를 헤집"으며 "먹을 걸 찾느라 정신없는데", 자신은 "진주를 걸치고 파크애버뉴에 살고" 있는 것이 부끄러워, 들통날까 전전긍긍했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런 게 네 아빠와 나야. 받아들여"(17).

저자 '저넷 월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기들 원하는 방식대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괴짜라고 부를 사람도 있고, 자유인으로 볼 사람도 있고, 무책임한 부모라고 평가할 사람들도 있을, 그런 삶의 방식을 '평생' 고집한 사람들입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은 그녀의 첫 기억, 그러니까 저자가 세 살 때 혼자 펄펄 끓는 물에 핫도그를 데우다 전신 화상 사고를 당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그녀의 엄마는 아이를 위해 요리를 하는 것보다 그 시간에 영원히 남을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빠는 원하면 어떤 일이건 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어떤 일이든 오래하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고, 해고를 당하거나 미납 고지서가 쌓이면 서슴없이 '도주'를 택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주로 한밤중에 느닷없이 짐을 꾸려서 떠나는 건 우리에겐 일상이었다"(37).

이 아이는 생존에 필요한 짐만 챙겨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부모를 따라 사막 한복판에서 별을 보며 잠을 자기도 하고, 공깃돌 크기만 한 빗방울들이 억수처럼 쏟아지는 날에는 세찬 빗속에서 물을 튀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잘랐습니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먹을 수 없고 늘 언제 떠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아이는 일찍부터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며 (강제적으로) '강하게' 성장해갑니다.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견디질 못하는 강박증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밤에 긴 산책길에 나서는 걸 여전히 좋아했고, 틈날 대마다 서쪽 강가로 나가 걸었다.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별을 보긴 힘들었지만, 날이 맑은 밤이면 검은 강과 하늘이 만나는 곳 위에서 변함없이 빛나는 금성을 볼 수 있었다"(443).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저자는 "사는 게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정말 재미난 건 변함이 없었다"(45)고 고백합니다. 사막 한가운데 으리으리한 유리성을 짓겠다는 꿈을 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아빠는 불안정한 생활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딸에게 '금성'을 남겨주었고, 그런 아버지를 유일하게 견뎌 준 엄마는 그런 아빠와 살며 "지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의미심장한(?)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이 아빠와 엄마가 자녀를 대하는 방식이 "유별나서" 불쾌감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것을 "양육"이라고 이름부치기가 망설여지는 일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방식대로 자녀를 사랑했다는 생각은 듭니다. 결핍이 가득하고 파괴적인 측면도 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겨준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책이 그 증거입니다.

잘하려고 해도 마음대로 잘 안 되는 것이 자녀 양육이고, 완벽하려고 해도 절대 완벽할 수 없는 것이 부모 노릇입니다. 어쩔 땐 잘하려는 노력이, 완벽하려는 욕심이 자녀를 더 망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자는 완벽하려는 노력대신 그저 온전히 "미성숙한" 자기로 살며  부모 덕분에 그녀가 부모보다 더 성숙해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를 보며 생각합니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할" 문제인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부모를,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고민과 함께, 어쩌면 그것이 해답이 아닐까 하는 힌트도 함께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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