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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17년 8월
평점 :

공간도 입체고 시간도 입체다.
따라서 당연히 시간에도 옆구리가 있다.
거기 시간의 옆구리, 작은 골방 하나를 나는 알고 있다.
가끔 나는 그 골방으로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그때는 시간도 공간도 정지한다.
그리고 모든 현실은 사라져 버린다(34-35).
가끔 작은 골방 같은 책을 만납니다. 그런 책을 만나면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던 작은 세계가 사라져버리지요. 세상에 책이 많아질수록 그런 책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열불나는 아이러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인쇄물 더미 속에서 골방 같은 책을 만나면 기쁨이 30배, 60배, 100배가 되니, 그 또한 웃픈 아이러니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은 제게 그런 골방이 되어 준 책입니다. 조금 일찍 눈을 뜬 새벽, 다시 잠들지 않고 이 책을 펼쳐 들었습니다. 잠깐 읽으려던 것이 어느 새 끝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한 두 시간 출근이 늦어버렸지만, 오랫만에 기분 좋은 충만함으로 가득 채워진 덕에 오히려 즐거웠습니다. 몰입의 여운 탓인지, 당황하기보다 하루 지각하고 말지, 하는 배짱도 생겼습니다.
나는 글이나 책이, 읽는 이를 알게 만들고, 느끼게 만들며, 깨닫게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는 쪽보다는 느끼는 쪽이 더 낫고, 느끼는 쪽보다는 깨닫는 쪽이 더 낫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16-17).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은 우리가 잘 알고, 사랑하는 작가, '이외수'라는 한 사람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알고, 느끼고,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알기보다 느끼고, 느끼기보다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글이 시간과 공간을 정지시킨다면, 정태련 선생님의 그림은 시간과 공간에 쉼을 주고 있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절실함이 있고, 잔뜩 힘을 주지 않았어도 진정성이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으면, 나는 이외수 선생님이 완벽한 작가이기를 바랐던가. 아닙니다. 그랬다면 이외수 선생님의 글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외수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것은, 투명하게 자신을 내비치고, 온 마음과 삶으로 글을 쓰는, 그래서 시시껄렁해 보이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까지도 함께 공유하며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에서도 그런 순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존버'라는 단어를 찾아보기도 하고(존나게 버티기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문장들과 생생한 단어들과 삶과 사랑을 위한 전력투구와 진심어린 위로들을 꼽씹으며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갈 힘과 방법을 느끼고 깨달았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늘 정신과 영혼을 가꾸는 일에만 골몰해 왔는데 이제부터는 몸을 가꾸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겠다"(102)는 이외수 선생님을 보며, 정신은 물론 몸을 가꾸는 일에도 게으른 난 도대체 어떤 인생인가 심각하게 반성도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는 방>, 다른 사람에게도 읽히고 싶은 책입니다. 읽는 맛과 감동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