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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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고 혹독한 자연을 배경으로 거칠고 폭력적인 인간 본성을 날카롭게 포착해 비틀어 내며 거장의 반영에 오른 애니 프루는 드물게 독자와 평론가 양쪽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앞 날개 中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명의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2005년 개봉, 이안 감독)의 원작 소설을 포함한, '애니 프루'의 단편집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단편'으로 평가받은 <가죽 벗긴 소>와 오헨리 단편소설 상을 수상한 <진흙탕 인생>을 비롯해 총 11편의 작품을 담았는데, 특이하게도 모두 '와이오밍'이라는 서부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인디언어로 '대초원'이라는 뜻의 와이오밍주는 미국 서부 로키산맥과 대평원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394). 작품을 읽기 전에, 와이오밍을 이미지 검색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작품을 상상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에게 '브로크백'이라는 거대한 자연환경은 압도적인 영상미와 함께 태곳적 안식처와 같은 곳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했기에 도망쳐야 했던 잭과 에니스에게 '브로크백'은 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고, 죽어서라도 다시 찾고 싶은 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아름다움과 신비를 기대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무자비하고 혹독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잭과 에니스에게 눈 멀어 브로크백을, 그리고 와이오밍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창조주에게 동산을 선물로 받은 인간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방에서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진대도", 그 앞에 서면 "인간사의 비극이라는 건 한없이 보잘것없"는 것이 되고 마는 무심하고도 사나운 땅과 싸워야 하는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산이 아니라, 사나운 광풍, 황량하고 공허한 땅, 길이 없는 광활한 초원, 질식할 것 처럼 찍어누르는 바위 절벽, 금방이라도 괴물을 토해낼 것처럼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연의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며, 벌거벗겨지는 거칠고 초라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애니 프로의 작품에서 와이오밍이라는 배경은 이토록 특이하고도 특별한 장소다. 그의 작품에서는 와이오밍이라는 환경이기에 발생할 수 있는 사건과 사고가 주를 이룬다. 자연뿐만이 아니다. 거친 본능과 여과되지 않은 본성이 판을 치는 와이오밍의 인간 세계도 그러하다. 다른 곳이라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을 만한 일도 와이오밍에서는 어쩌다 보니 '있을 수 있는 일'이 된다. 즉, 와이오밍은 일반 상식으로서는 재단할 수 없는 혹은 재단해서는 안 되는 별개의 현실이 존재하는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394). 


"작은 목장에서, 주민이 고작 세 명에서 열일곱 명에 지나지 않는 외딴 교차로에서, 무모하고 난폭한 광산촌의 트레일러 캠프장에서, 그 어떤 종류의 살육이나 잔혹한 일이 벌어진대도, 그 어떤 사고나 살인이 일어난대도, 하늘에 떠오르는 여명의 빛을 늦출 수 있는 것은 없다. ... 이 모두가 덧없는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것은 뭐든 유한의 시간 동안만 머물렀다 사라질 뿐이다. 중요한 건 오로지 대지와 하늘이다. 매일 끝없이 되풀이되는 아침의 여명이다"(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 123-124).

미디어를 통해 가상 환경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숲과 산이 우리의 삶의 터전이었던 때를 다시금 기억하게 합니다.
자연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지금의 삶에 축배라도 들어야 하나 싶을 만큼 그 체험이 너무도 강렬하고 잔혹합니다. 황량한 땅과 맞서는 모습이 꼭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살갗이 다 드러난 채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절대적인 증오를 쏘아보내는 소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삶과 통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하는데, 환경을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를 자꾸만 가상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겨울철 뜨거운 온천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증기 구름처럼, 여러 해가 가도록 미처 말하지 못한 것들 그리고 이제는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 - 인정, 고백, 수치심, 죄책감, 두려움 - 이 그 둘 주위를 둘러싸고 피어올랐다. ...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끝난 것도, 새로 시작된 것도, 해결된 것도"(브로크백 마운틴, 381).

다른 이야기들에 비하면 잭과 에니스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낭만적입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자연 안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이 거부감이 들 정도로 야만적이고 폭력적인데, 유독 동성애적 본능만은 '거부할 수 없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욕구로 그려낸 것이 특이해보입니다. 살아남으려고 버둥거릴수록 자연의 무자비한 힘이 더 커보이는 것처럼, 잭과 에니스가 두려움에 떨수록 인간의 금기가 더 무자비하게 느껴지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거칠고 파괴적이더라도 본능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이다. 바로 그거다. 오래 버티고 서 있다 보면 언젠가 앉을 때가 오는 법이다"(세상 끝자락의 레더월 목장, 194). 

무심하게 반복되는 자연의 거대한 흐름 속에 '한낱' 인간일 뿐인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간을 아주 왜소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환경 속에서 무엇을 통제한다는 생각은 허상에 지나지 않을까요?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 대자연의 난폭한 본성과 인간의 파괴적인 본능을 우리가 과연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절망적으로 던져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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