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면 그녀는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사랑을 태만히 했어요. 귀찮아했죠. 
사사로운 감정을 쌓아가고, 서로에게 맞춰가는 노력을 게을리 했어요(55).

"왜 사랑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됐을까?"(244) 이 책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인생을 포기하고 나홀로 생활을 즐기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책입니다. 변질되기 쉬운 사랑의 속성에 환멸을 느꼈을 수도 있고, 사랑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상실과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반대급부로 무관심을 낳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변명 뒤에 '자기중심성'이라는 독버섯을 키우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정말 그래. 다들 자기만 소중해서 어쩔 줄을 모르지"(40).



사랑은 감기와 비슷하다.
감기 바이러스는 어느새 몸속으로 침투하고, 알아챘을 때는 이미 열이 난 상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열은 사라져간다.
고열이 거짓말처럼 여겨지는 날이 온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이 그 순간이 찾아온다(61).

이 책은 <2016년도판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은 책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에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 현재의 '후지시로'를 중심으로, 풋풋했던 시절 그의 첫 사랑이었던 과거의 '하루', 함께 결혼을 준비하고 있지만 둘 사이에 열정 같은 찾아볼 수 없는 현재의 '야요이'가 그들입니다. 하루와의 사랑이 오래 전 잊혀진 '열정'이라고 한다면, 현재진행형이지만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공유해가고 있는 야요이와의 사랑은 어느 새 들뜬 열기가 식어버린 '냉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배달된 "처음 사랑했던 그녀(하루)의 편지"를 통해 후지시로는 자신 안의 상실된 감정과 서서히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은 감기와 같다.
그것은 어느 새 시작되어 있다(55).

후지시로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21), "어느 새 자기 자신도 남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없는"(60) 그런 현대인을 대표합니다. 겉으로 그리 들어나지는 않지만 자신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때 그의 곁에는 자신보다 그를 더 소중히 여기는 '하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너무 쉽게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4월이 되면 그녀는>의 작가는 우리가 "음악에 매료되는 건 그 가수,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세계에 매료된다"는 것이고, "사진에 마료되는 건 그걸 찍은 카메라맨의 마음에 매료된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49). 그리고 "인간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동물", "타인의 일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말합니다(40). 그런데 "최근에는 인간이 개나 고양이 쪽에 가까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경고합니다. 자기중심성에 사로잡혀서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을 갖는 행복을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대로 반사해서 보여줍니다.

자기 자신이 제일 소중한 사람은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손해보지 않으려, 상처받지 않으려 무장할수록 쉽게 사랑에 환멸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책은 나의 감정도 확신할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확신하겠느냐며 사랑에 무심한 척 살았던 제게, 잊고 있는 한 가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사랑은 감기와 같아서 어느 새 그 열기가 식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지와 상관 없이 감기에 걸리듯 사랑에 빠져드는 존재로 지음받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똑같이 겹쳐지는 순간이 지극히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바로 짧은 한 순간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며 신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랑을 태만히 하지 말고 열심히 지켜가라고 말입니다.

파격적이거나, 진한 감동이 있거나, 상징성이 기발하거나 뚜렷하지도 않지만,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놓치고 난 뒤 한 번쯤 문득 문득 생각나는 사람 같은 책이라고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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