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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 제155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그렇게 또 살아간다.
하이데거라는 철학자는 말했다.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고. 나는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읽으며 생각한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옭매듭 안에 던져진 존재라고. 그 옭매듭을 벗어던지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때로는 갑갑하게 내 인생을 조여오는 그 매듭이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끈이라는 걸 말이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 담긴 여섯 편의 단편은 가족의 사랑을, 가족이라서 더 아픈 사랑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사랑을 잃어서 아프고, 사랑을 받지 못해 아프고, 사랑이 어긋나서 아프고, 사랑이 서툴러서 아프고, 사랑을 알지 못해 아프고, 뒤늦은 사랑 때문에 아프다. 그런데 그 사랑의 고통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이고, 우리가 하는 사랑의 아이러니라는 것.
엄마가 내 팔을 잡는다.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요시다 씨라는 요양사에게 늘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것이리라. 홀로 남아 나이를 먹고, 병에 걸려서야 겨우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상대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전의 고슴도치처럼 줄곧 주위를 경계했던 인생에는 끝내 그런 상대가 없었다(언젠가 왔던 길, 94).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를 읽는 내내 '고슴도치'를 생각했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어느 책 제목처럼, 고슴도치 운명을 타고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입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납게 돋은 가시의 경계를 풀고 여리디 여린 속살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상대도 가족이라 것이 가족의 힘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는 가족이라서 더 아픈 사랑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5년 전,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로 곁을 떠난 딸을 어떻게 잊어야 하는지 몰라 아픈 부모는, 딸을 대신해 참석한 성인식에서 그 잊지 못해 괴로운 모든 기억이 앞으로 살아갈 날의 축복임을 깨닫는다(성인식). 엄마의 힐란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쳤던 딸은 치매를 앓으며 무너져버린 엄마를 마주하고 나서야 힐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엄마의 상처를 이해하게 되고, 상처받은 어린시절의 자신을 토닥인다(언젠가 왔던 길). 인적이 드문 해변의 조그만 마을에 자리한 이발소를 일부러 찾아온 손님과, 손님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인지 아니면 그냥 말이 많은 것인지 이발하는 내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덤덤하게 풀어놓는 이발사 사이에 놓인 긴장. 그렇게 타인으로 만나 다시 타인으로 살아가겠지만, 비로소 이해하게 되는 나를 버린 아버지의 인생(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음에도 사랑에 서툴고 투덜대기만 하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편지(멀리서 온 편지). 가족 안에서 사랑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의 내팽개쳐진 푸른 슬픔(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언제나 잃은 뒤에 더 간절해지는 사랑, 그것은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때가 없는 시계).
우리는 그렇게 사랑하며, 상처받으며, 그렇게 또 살아간다. 2016년 나오키상 수상 작품답게 따뜻하면서도 묵직하게 가슴을 울리는 이야기. 일본소설이라 그런지 그 어떤 해외소설보다 정서적으로 더 강하게 통하는, 그래서 더 울컥하게 되는 아름다운 여섯 편의 이야기.
성인식
마음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흔히들 하는 말이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해결될 수 있을까(24).
언젠가 왔던 길
엄마가 누군가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자신의 미의식을 고집하면서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고 싶어서이다. 자기를 키지기 위한 수단으로. 딸의 옷차림과 행동거지에 잔소리를 하는 것은, 곱게 자란 아버지의 친척들이 엄마의 처지를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놀리고 야유했기 때문이다. 서양식 집과 생활을 좋아하는 것은 소녀 시절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다고 나를 힐난하는 것도 그 말이 자신에게 쏟아질까 봐 늘 두려움에 떨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 떨어져 사는 중에 그 옛날의 엄마 나이를 지나버린 나는 지금은 그런 것들을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그런 엄마의 일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데생의 샘플을 멀리서 바라보면, 가까이에서 봤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엄마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다(84-85).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그래서 이발을 하는 동안 바다를 보고 있으면 제 얼굴에는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 얼굴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젠가 당신 살인자지, 하고 누가 손가락질할까 봐 두려워서(139).
멀리서 온 편지
만약 이 전쟁이 ****이 된다면, 나는 당신과 우리 아이와 함께 영원히 **한 날을 보내려고 하오. 아이들도 많이 만듭시다. 웃으면서 지냅시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한동안, 몸 건강히 지내세요(184).
하늘은 오늘도 스카이
아카네의 마음은 걱정이 돼서 이렇게 슬픈데, 화가 나는데, 참을 수가 없는데, 오늘도 하늘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스카이, 바다는 바보 같이 블루(238).
때가 없는 시계
"누구나 시곗바늘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겠죠"(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