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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평점 :

"철학이 하고 싶은가? 그러면 동일한 상태가 되풀이된다는 신화, 오늘 같은 내일이 이어진다는 착각에서 뛰어내려라"(38).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유행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았습니다.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남들 사는 대로 살지 말고, 치열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경고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생각의 물꼬를 트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타인의 생각에 강요된 삶이나 통념적 훈계를 벗어나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받은 교육 자체가 강요된 지식이었고, 통념적이었으니까요. 무서운 건, 스스로 주체적이라고 믿는 그 생각 또한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적으로 생각하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철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각의 미술관>은 "통념을 넘어 의문을 제기하고,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의 힘을 키우는 과정"(5)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미술품은 이를 위한 아주 훌륭한 안내자"라고 소개합니다. <생각의 미술관>은 그림을 매개로 철학적 사고를 확장해가는 책입니다. <생각의 미술관>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주목하고, 그것을 생각의 물꼬는 트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 자신이 바로 "그림을 통해 철학을 하고자" 했던 화가였기 때문입니다. "마그리트는 대상보다는 자신의 사상을 그리는 화가였고, 그러한 의미에서 캔버스 앞에서 붓과 팔레트를 든 철학자다"(16).
<생각의 미술관>은 마그리트의 작품을 통해 문제의식에 접근하고, 다른 화가의 작품을 활용하면서 사고를 확장해가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마그리트의 그림은 그 그림 자체가 하는 말에 주목하고, 그림이 하는 말에 주목하다 보면 철학적 문제의식이 싹트고, 그 문제의식에 대해 철학자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해 다른 그림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철학적 사유를 이어갑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마그리트의 그림, 즉 "정지된 화면 안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는 과정입니다. 마그리트이 그림은 통념을 비웃는 '황당함'이 신선한 충격을 주고, 그 신선한 충격이 자유로운 생각을 자극합니다. 그림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각적 충격이 어느새 철학적 사고로 전환됩니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가치>라는 작품은 사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장난기'가 가득해 보입니다(160-170). "의도적으로 각 사물의 상식적 비례관계를 무시"한 작품을 감상하며,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정말로 머리빗보다 침대가 중요한가?"
<생각의 미술관>이 시도하는 것은 완강하고 고정된 상태를 고집하는, 다시 말해 습관에 찌든 사고방식을 해체하는 것입니다. 철학적 문제의식은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견고한 관성에서 벗어날 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22). "변화의 차이를 인정할 때 철학적 사고는 출발선에 선다. 만약 사물이나 사고가 동일하고 고정되어 있다면 깊이 생각하는 과정이 절실할 이유가 없다"(35). 그리고 마그리트의 그림은 일상의 습관적 사고를 거세게 흔드는 역할을 휼륭히 해줍니다. 저자를 따라 사고를 확장해가다 보면, "사소하고 평범한 광경 하나조차도 그 안에 결코 가볍지 않은 많은 사정과 사회 변화를 담고 있"(113)다는 심봉사 눈 뜨듯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각의 미술관>은 무거울 정도로 매우 진지합니다. (솔직히 감히 이 책을 평가할 주제는 되지 못하지만) 시종일관 '나 지금 진지해'라고 정색하는 것 같아서, 농담을 즐길 여유가 없는 것이 살짝 아쉽다고 할까요. 그래서 오히려 통념적인 철학처럼 읽힌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철학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잘 보여주기도 합니다. 딱딱한 철학책이 아니라, 무엇인가 더 생기 있고 생생한 철학적 사유 방식을 배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