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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여는 성경 - 삶을 다독이는 한 줄의 말씀, 한 줄의 명화
전창림 지음 / 어바웃어북 / 2017년 4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512/pimg_7685591861651034.jpg)
▲ 대 루카스 크라나흐, <선한 목자>, 1550, 캔버스의 유채, 독일 에르푸르트 미술관
"세계의 모든 명화는 성경이 그렸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을 세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어떤 작품을 꼽으시겠습니까? (순전히 서구 중심적이긴 하지만) <명화로 여는 성경>의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피에타>를" 꼽습니다. 세 작품 모두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완성한 거장들의 작품이라는 것"외에 한 가지 공통점이 더 있습니다. "모두 성경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216). <명화로 여는 성경>은 성경을 주제로 그린 명화를 성경의 순서대로 엮어 이 자체로 한 권의 성경이 되도록 했습니다. 성경이 명화를 읽고, 명화가 성경을 읽습니다!
<명화로 여는 성경>을 읽는 가장 큰 재미는, 예술가들의 붓터치 하나, 의도 하나가, 그 자체로 한 편의 설교(메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책 표지의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선한 목자>라는 작품입니다. <선한 목자>를 그린 화가들은 많은데, 이 그림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이 그림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예수)의 남루한 옷과 초췌한 몰골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독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선한 목자'의 모습은 남루한 옷과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이 주목받는 이유다. 오랜 시간 강을 건너고 숲을 헤치면서 도중에 늑대를 만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는지 목자의 옷은 다 헤지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182). 성경을 읽고 묵상하기 위해서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현장을 상상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예술가은 자신의 묵상과 상상이 더해진 작품을 통해 성경을 읽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는 것이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7/0512/pimg_7685591861651035.jpg)
▲ 렘브란트, <탕자의 귀향>, 1669, 캔버스에 유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르미타주 미술관
<명화로 여는 성경>에서 유독 눈이 갔던 작품은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입니다. <탕자의 그림>에 유독 마음이 갔던 이유는, 그림과 화가의 생애가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젊어서부터 유명했던 렘브란트는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치와 방탕의 날은 그리 길지 못했습니다. 불행이 거듭 그를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렘브란트에게는 불행이 하나 둘 찾아오는 데, 병으로 어린 아들을 잃더니 3년 뒤에는 큰 딸, 또 2년 뒤에는 작은 딸마저 잃고 말았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아내 사스키아마저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불행은 그치지 않았다. 새 삶을 찾기 위해 재혼하지만 새 아내 사이에서 낳은 어린 아들을 잃더니 머지않아 또 다시 아내와도 사별하고 만다. 그리고 렘브란트가 그렇게 아끼던 첫 아내 사스키아 사이에서 낳은 아들 티투스마저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 그림 <탕자의 귀향>은 티투스를 잃은 뒤 그린 것이다"(187).
<탕자의 귀향>은 렘브란트의 비극적인 생애와 신앙이 만나 탄생한 작품인 것입니다. 이 책의 작가가 읽어주는 '명화'의 감상의 포인트는 이것입니다.
작은 아들은 머리도 빠지고 옷도 신발도 헤졌다.
돌아온 아들의 등에 얹은 아버지의 두 손이 특별하다.
렘브란트는, 왼손은 억센 남자의 손으로, 오른 손은 여린 여자의 손으로 그렸다.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고 모든 것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렘브란트도 갈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왼손은 자신의 모든 시련을 해결해주실 강한 능력의 손으로,
오른 손은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사랑의 손으로 그렸다.
빨간 망토를 걸친 아버지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포근하다.
둘째 아들이든 첫 아들이든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눈은 고통으로 거의 장님이 되셨다.
그림의 아버지처럼(187-188).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처럼 작가의 생애와 작품이 만난 에피소드가 많지는 않지만, 작가의 생애가 자신의 작품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연'을 알면 '그'와 '작품'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설교를 할 때, 가끔 명화를 이용할 때가 있습니다. 주로 '카라바조'의 작품을 애정했었는데, 이제 렘브란트의 그림도 자주 찾게 될 것 같습니다. 설교를 할 때 명화를 보여주면 백마디 말보다 더 큰 감동을 공유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예술작품이 가진 힘이겠지요. <명화로 여는 성경>은 명화(예술가)는 성경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한 가지 더, 성경을 알 때 명화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가 더 분명하고 크게 들린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특별히 성경을 사랑하며 읽고 묵상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