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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 - 고대의 주술사부터 미래의 인공지능까지
이승구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의학 관련 예술작품들을 통해 과거 의학의 역사 현장을 간접적으로 접하고 상상해보다!"
그림 속 의학이라고 하면 라파엘로가 그린 초상화 '라 포르나리나'가 떠오릅니다. 조지타운대학의 에피날이라는 박사는 그림 속에 검푸른 빛이 도는 그녀의 피부에 주목했고, 라파엘로가 그린 정밀한 그림은 유방암 증상을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라 포르나리나는 2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라파엘로의 작품은 이미 그녀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실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에서 기대했던 것도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그림을 '의학적 시각'에서 읽어주는 책을 예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것은 총체적 의사학(Medical History)입니다. 그림 감상이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의학을 주제로 삼은 예술작품과 삽화를 통해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의학수준을 보여주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 다소 '충격적인'(!) 의학의 발달 과정을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풀어놓고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혈액형이 발견되기까지, 약 6백 동안 고귀한 생명들이 속절없이 희생되어 왔다는 것입니다(36). 동물과 사람 간의 수혈 등 무모한 시도들 때문에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어야 했지만,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는 그런 과정 속에서 의학이 발전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또,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가 어쩌다 약국을 가리키는 상징이 되었는지, 올림픽 같은 큰 세계대회가 열리면 어느 나라든 콘돔을 배포하는데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선수둘에게 콘돔을 나눠주기 시작한 때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였다는 것, 안경이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기 좋은 고가의 사치품이었다는 것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을 통해 당시의 의학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달베르트 프란츠 젤리그만의 <테오도르 빌로트 의사의 수술 장면>을 보면, 수술방이 개방되어 있고 수술 기구 등에 감염 예방 조치와 위생 개념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3). 우리는 흥미롭지만(?),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를 생각하면 가슴 철렁할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림이 정말 훌륭한 '기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천년 그림 속 의학 이야기>는 의학의 역사를 말하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염병이 창궐하면 별 소용없는 약제나 탕약을 쓰고, 그러다가 환자가 죽으면 사체 화장 후 기도와 제사, 굿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29)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점에서, 의학이 지금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에 감사하지만, 동시에 얼마 전 메르스 사태를 떠올려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학사를 둘러보니, 인간의 이성과 지식을 자랑하기보다 겸손해야겠다는 것과, 단순한 직업군이 아니라 높은 이상과 사명감을 가진 의학자와 의사가 많이 배출되기는 바래봅니다. "우리나라는 OECD 29개국 중 멕시코를 제외한 27위의 의사 부족 국가"(32)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