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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 - 천천히 평온하게
백춘성 지음 / 두란노 / 2017년 4월
평점 :
"서서평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시신마저 의학용으로 기부하며
조선을 위해 죽은 하나님의 딸이었다."
원수는 물에 새기로, 은혜는 돌에 새기라 했습니다. 그러나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기는 우리입니다. <조선의 작은 역사 서서평>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은혜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1912년 조선에 들어와 일생을 헌신한 의료 선교사 이야기이지만, 서서평 선교사에게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빚진 자'입니다. 그녀가 뿌린 교육과 구제와 복음의 씨는 서서평 선교사가 돌보았던 이웃 한 사람, 한 사람은 물론 천대받던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을 바꾸었고, 가정을 바꾸었고, 그렇게 우리 사회를 바꾸며 퍼져나가 지금까지 귀한 열매를 맺어오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은혜를 추적한 책입니다.
다음의 고백은 그 한 예입니다. "가장 미개하고 낙후됐던 섬(추자도)인데, 사람들이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고 깨어 있어서 지금은 교육 수준이 어느 섬보다도 높다. 상수도와 자가 발전 시설도 어느 섬보다도 먼저 갖췄고, 유능한 지도층 인사들이 많이 배출된 것에 대해 자부심이 높다. 섬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다 기독교 덕택이라고 알고 있다"(129).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자신의 삶으로 예수의 사랑을 증거한 서서평 선교사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일 나 먹기 위해 오늘 굶는 사람을 본 척 만 척할 수 없으며,
옷장에 옷을 넣어두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사람을 버려둘 수는 없다고 했다"(146).
<조선의 작은 예수 서서평>이 전하는 가장 큰 감동은, 이 파란(?) 눈의 선교사가 복음을 위해, 그리고 조선을 위해 철저히 그리스도인으로 살았고, 조선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동료 선교사들과 자신이 도운 학생들에게 서서평 선교사가 미움을 받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바로 그 반증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과격하며 엄격했던 탓도 있다고 하지만, 14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고, 오갈 데 없는 과부 38명을 자신의 집에 거두고, 늘 남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월급뿐만 아니라 자신의 지식, 몸, 시간, 일생까지 남김 없는 그녀의 헌신이 그들에게 찔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교사들 중에도 선교보다는 치부에 관심이 많은 이가 있었나 봅니다. "기아에 허덕이며 눈물겹게 살아가는 모습은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를 먼저 챙겼던 선교사들에게 서서평의 삶은 소리없는 질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직접적으로 은혜를 입은 학생들 중에서도 서서평 선교사를 미워한 이가 있었던 것은 왜일까요? 표면적으로는 그녀의 성격 탓이라고 하지만, 서서평의 도움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보니 자신들도 누릴 수 있는 것은 좀 누리면서 여유롭게 살고 싶은데, 자신의 동족을 위해 끝까지 헌신을 다하는 서서평의 보며 양심의 찔림을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서서평 선교사가 운명했을 때 남은 소유물이라고는 낡은 담요 반 장과 지갑 안의 27전, 부엌의 강냉이가루 2홉이 전부였으며, 통장 잔고 역시 0원이었다고 합니다(146). 서서평 선교사 이야기는 진한 감동을 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함을 알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며,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 신앙 양심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신앙 양심에 찔림을 받았지만,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이처럼 귀한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서서평'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았다는 것이 송구스러울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