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일반판)
반디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믿으려야 믿을 수 없고 안 믿으려야 안 믿을 수도 없는 현실 앞에서 울었네"(46).



제가 생활하는 인천에 탈북민들이 많이 정착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구라도 친해질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인연이 닿지는 않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고 부르며 자란 세대로서 탈북민이 바로 우리 옆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얕은 죄책감이 차오르기도 합니다. 그들의 실상에 대해 눈감고 있는 우리의 무관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양심이 말해주나 봅니다.


<고발>은 북한의 살벌한 참상을 문학으로 고발하는 소설입니다. 제3의 눈이 보고 전하는 참상이 아니라, 그 체제 안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의 생생한 <고발>입니다. "독재의 칼을 품고도 겉으로만 평등이요, 민주주의요, 역사의 주인이요, 지상낙원 건설이요 하는 허울 좋은 간판"(261)에 한평생을 기만 당했다는 것을, 그 신념, 그 기대가 한갓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 실망과 회오의 괴로움을, 그 억울한 좌절감을 마지막 호흡을 짜내듯 생명을 걸고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낙인 찍히면, 그 사회에서는 제1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성분'이라는 이름으로 대를 이어 그 가족을 묶는 포승줄이 된다는 것, 강제 이주와 추방이라는 형벌이 내려지면 제 나라 땅에서도 제 가고 싶은 데를 제 발로 갈 수 없다는 것, 때로는 울음도 반항이 될 수 있고 반항 앞엔 오직 가차없는 죽음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아파도 웃어야 하는 게 그 땅의 체질이라는 것, 억압과 통제하는 곳일수록 연극이 많아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결심했네. 그 어떤 성실과 근면으로써도 삶을 뿌리내릴 수 없는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말이네"(46). 그리하여 "내 나라 내 땅에서 탈출기를 쓰"는 이 참으로 기막한 일이 지금 우리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순찰정의 총알에 맞을 수도 있고 풍랑에 나뭇잎처럼 삼켜질 수" 있는데도 그들이 탈출에 목숨을 거는 이유를 이렇게 고발합니다. 이렇게 너절하게 사느니 "차라리 죽어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낫"(46)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하지만 백 번을 쏘아도 죽이지 못할 겁니다. 인간다운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은 저의 욕망만은!"(210)


소설가 신경숙 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고발'을 읽는 일뿐이다. 그것만이 목숨 걸고 이 글들을 써서 세상에 내보낸 작가를 구원할 것이다." "생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눈 뜨고 보면서도 이렇게 속수무책일 수가 있단 말이냐!"(262)라는 무기력한 한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남한의 실상도 못지 않다는 좌절감이 무거운 돌처럼 내리누르지만, <고발>을 읽었으니 그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아도 될지 잠시 망설여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전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나비의 작은 날개짓이라도 되기를 바래봅니다. 이 책은 전체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함께 우리가 누리고 있으나 감사하지 못했던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도 다른 모양으로 계속되고 있는 억압과 통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하는 싸움이 무엇인지 여기서 하나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더불어, 북한의 살벌한 참상을 이토록 아름다운 언어로 고발할 수 있다는 것에서, 문학이 가진 놀라운 힘을 새삼 되새겨봅니다. <인문학은 밥이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프랑스 혁명이나 미국의 독립선언이 당시의 대중소설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는데, <고발>에 그런 놀라운 힘이 숨어 있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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