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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들의 역사
마야 룬데 지음, 손화수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평점 :
"자네가 자식을 낳는 이유는 뭔가?"(64)
"3포 세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즘은 다시 "7포 세대"라고 하나 봅니다. 취업, 결혼, 출산에 이어 내 집 마련, 인간관계, 꿈, 희망까지 포기해버렸다는 절망의 선언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시작도 해보기 전에, 다 살아보기도 전에, 설렘과 기대는 사라지고 지치고 비틀거리는 건, 그만큼 우리네 일상이 녹록치 않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벌들의 역사>를 읽으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포기해버린 것이 무엇일까? 특히 출산의 문제,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세상, 어떤 사고가 덮쳐올지 모르는 위험한 세상에 한번쯤 이런 고민도 해보았겠지요. "바로 그런 것이 인생이라고? 아, 인생은 바로 그런 거라고 말해야겠지? 성장을 하고 후손을 보고, 자기 자신의 삶보다는 자식들이 요구하는 것과 그들의 삶을 본능적으로 더 앞세우는 일. 자식의 배를 채워주는 일. 인간은 바로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노예로 변하게 마련이지. 지능과 지성이 자연과 본능 앞에서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삶. 자네 잘못이 아니야. 아직도 늦지 않았어"(66).
그리고 이런 회한의 말도 들어보았을지 모릅니다. "나는 지난 시간 가족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해왔다. 내 가족을 위해 나 혼자서 일을 해왔던 것이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진 않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입 안이 바짝 말라왔다. 전에는 가족의 미래를 떠올리면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닿을 수 없는 멀고 불확실한 미래만 생각나서 힘이 쭉 빠져버린다"(92).
"그들은 삶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다.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꽃가루를 모아 오고 꿀을 만들어내는 일"(580).
<벌들의 역사>는 "꿀벌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우리 인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사는 세 명의 주인공 - 타오(2098년, 쓰촨성, 시롱, 242지구), 월리엄(1852년, 잉글랜드, 하트퍼드셔, 메리빌), 조지(2007년, 미국 오하이오 주, 오텀힐) - 을 통해 한 세대에서 한 세대로,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인간의 생명(삶)이 어떻게 대대손손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벌들의 생태에 빗대어 생각해볼 수 있도록 견고하게 이야기를 조직했습니다. "이 하찮고 조그만 곤충들에게도 대대손손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있습니다. 신은 이 조그만 생명체에도 기적을 숨겨놓았던 것입니다"(193).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벌과 곤충은 우리의 삶의 터전인 이 지구의 건강을 측정할 수 있는 온도계와도 같습니다"(6). 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벌들의 역사>는 벌이 없는 세상, 벌이 사라진 세상의 재앙을 보여주며,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에게, 다음 세대에게 닥쳐올 재앙이 무엇인지를 무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묵직하게 울리는 교훈은 지금 우리의 결정이 다음 세대의 삶을 결정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살충제의 독성은 흙 속에 남아 다음 세대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과 벌, 모두에게"(526). 그리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그 책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자연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과, 교육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거부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을 억제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은 바로 교육과 지식이라는 말도 적혀 있었다(52).
"이 세상은 ... 항상 감사해야 할 것들로 채워져 있습니다"(7).
<벌들의 역사>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은 제각기 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울하고 암울합니다. 동물학자를 꿈꾸었으나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곡물 유통업 상인으로 살게 된 월리암은 끝내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지 못한 채 무기력한 삶을 이어갑니다. 평생 양봉업자로 살아온 조지는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군집 붕괴 증후군' 현상으로 어느 날 벌 떼가 감쪽같이 사라진 이후 아들에게 가난밖에 남겨줄 것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타오는 세상은 그 자체로 재앙이었습니다. 벌들이 없으니 꽃과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었고, 흔한 과일과 채소들이 점점 사라지고, 육류 생산량도 줄어들고, 식량 감소와 함께 인구도 감소하기 시작하면서, 타오는 이미 붕괴된 세상을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들의 역사>를 읽으며 아름다운 감동에 전율하게 되는 것은 오늘 우리의 삶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뿌려 놓은 사랑의 씨앗이 있다는 걸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기대와 설렘은 사라지고 지쳐 비틀거리는 일상일지라도, 우리가 뿌리 놓은 작은 사랑의 씨앗이 인류에게 큰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마차 나비효과처럼 말입니다. <벌들의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책입니다. 낳았으니 길러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는 자녀 세대에게, 그리고 너무 쉽게(!) 출산을 포기해버리는 인류에게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병든 노인들을 그대로 두고 나와버렸다. 그들을 두고 떠나는 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우리는 우리를 낳아준 나이 많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