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불멸주의자 - 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셸던 솔로몬.제프 그린버그.톰 피진스키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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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을 움직여온 죽음의 사회심리학




인간 행동의 기저에 있는 주된 원동력은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이 책은 "자신이 죽을 운명임을 자각하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신이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 안다"(21).  그런데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슬픈 운명에 대한 자각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축복이 될 수도 있을까? 사회심리학적 측면에서 '죽음의 공포가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슬픈 불멸주의자>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물음을 독자 앞에 던져 놓는다. 죽음의 공포는 불멸을 향한 갈망으로 이어지고, 인류 문명은 필멸하는 인간의 불멸을 향한 집념의 기록이라는 주장을 내놓기 때문이다. "이 인지 능력 탓에 인간은 죽음의 인식에도 눈을 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은 멸망으로 가는 무력감을 낳기 마련이지만 인류는 다행히 이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초기 인류는 실존적 절망에 굴복하는 대신 특별하고 초월적이며 영원한 우주 한가운데 자리 잡았다"(134).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죽음의 공포라는 동력이 없다면 인류의 '문명'이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죽음의 공포라는 동력이 없다면, 생(生)의 의미와 가치에 지금처럼 죽기살기로 매달릴 필요 역시 없어진다는 주장으로 말이다.


<슬픈 불멸주의자>는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 어떻게 인간 행동의 기저를 이루는지 보여주는데, 역사와 과학, 인문학 뿐 아니라, 수많은 실험을 통해 죽음이 인간 경험의 핵심에 존재하는 고뇌라는 사실을 밝힌다. 이 책의 강조점은 죽음의 공포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 행동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 그 자체보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인식이 인간 존재 핵심에 존재하는 고뇌이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고 불멸 추구의 길로 이끈다. 그 탐색은 인간 역사의 과정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330). 


인류는 어떻게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은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얻고자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것을 '공포 관리 이론'이라고 부른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를 '공포 관리 이론'으로 설명한다. "공포 관리 이론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생물이 기본적으로 지니는 자기보호 성향과 정교한 인지 능력이 결합할 때 인간은 자지가 취약한 존재하는 것과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결과 무력감을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발생한다. 인간은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의 힘을 빌어 스스로를 육체가 사망한 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영속할 영혼과 정체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라고 확신하면서 이런 공포에 대처한다"(201-202). 다시 말해, 스스로를 문화 세계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공헌자라고 인식함으로써 공포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죽고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초월하는 문화적 세계관(의례, 예술, 신화, 종교 등)과 자존감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 현대 세계를 이끈 신념 체계, 기술, 과학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의례, 예술, 신화, 종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인간사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많은 진화론자들이 예술과 종교를 그 자체로 어떤 적응적 의미나 영속적인 가치를 지니지 않는, 그저 다른 인지 적응 형태가 낳은 불필요한 부산물로 본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완전히 틀렸다. 인간의 독창성과 상상력이 낳은 이 산물들은 초기 인류가 '죽음 인식'이라는 인간 고유의 문제에 대응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모든 문화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불멸을 향한 분투는 공포와 절망을 미연에 방지한다. 따라서 인류는 의례, 예술, 신화, 종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농경, 기술, 과학을 발전시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례, 예술, 신화,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농경, 기술, 과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133-134).



불멸, 목숨과도 바꿀 수 있다!(312)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죽음에 대한 인식이 가장 고귀한 인간 행동은 물론, 가장 비도덕적인 인간 행동 양쪽 모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공포 관리가 효과적일 때는, 자신이 의미 있는 우주에 속한 가치 있는 일원이라는 믿음 덕분에 대체적으로 유쾌하고 생산적이며 때로는 숭구하고 장엄하기까지 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우리와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이다. 우리의 문화적 세계관과 자존감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자기가 믿고 있는 근본적인 믿음에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할 때 우리는 대단히 큰 불안감을 느끼는데, 그리하여 "죽음의 공포는 다른 신념을 지닌 사람, 특히 우리가 악으로 규정한 사람을 상대로 하는 폭력을 자극한다"(227).


이 밖에도 <슬픈 불멸주의자>는 인간은 죽음을 상기했을 때, 강박적으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먹고, 쇼핑을 한다. 육체와 성생활을 불편하게 여기고, 자존감을 강화하기 위해 무모하게 운전을 하고, 인공 태닝을 하기도 하며. 정신분열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자//살, 병적인 도박 및 게임 중독과 같은 중독, 우울증의 기저에도 죽음의 공포에서 도피하려는 동기가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흥미로운 실험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는 죽음의 현실에 눈을 떠야 하는가?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가?


<슬픈 불멸주의자>의 세 저자는 자신의 문화적 세계관에 완전히 매몰돼 꾸는 인생의 꿈에서 깨어나 죽음의 공포에 대처하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적 및 무의식적 생각이 어떻게 불운한 심리적 및 행동적 방어를 부추기는지 이해함으로써 변화를 꾀하기를 희망한다"(346). 지금 우리는 "나와 다른 신을 숭배한다는 이유로, 또는 다른 깃발에 경의를 표한다거나 수백, 수천 년 전에 굴욕감을 겪었다는 이유로 타인을 증오하고"(205) 죽일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개인적인 고통과 중오, 살인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죽는다는 불가피한 사실에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331)가 이 책이 독자에게 내어놓는 마지막 질문이다.



<슬픈 불멸주의자>의 주제를 다르게 표현하면 "죽음과 함께 살아가기"라 할 수 있겠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쎄며, 우리 생활 전반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우선 나(인간 행동)와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인류 문명)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단초가 되어주며, 나아가 "지금 나는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목표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으로 데려다놓는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하루 하루의 삶에 더 깊이 감사하게 하고, 역설적이게도 삶을 더 숭고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문제이지만, 이 책은 전혀 새로운 통찰, 새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지루할 틈이 없이 읽었다. 우리는 죽음이 우리 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살고 있지만, 사실은 '죽음의 공포'에 깊숙히 지배 당하고 있다는 진실과 마주해보기를 권한다. 죽음의 공포와 생생하게 맞닥뜨리기 전까지, 나를, 타인을,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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