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임형선 지음 / 채륜서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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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고시조



이화우梨花雨 흣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봄에 배꽃이 비처럼 흩뿌려지면서 떨어질 떄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이제 벌써 가을이 되어 가을바람에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이 되었구나. 이처럼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임께서도 나를 생각하는가

천 리 먼 길에 직접 가보지는 못하고, 꿈에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이 책은 '고시조'를 재미있게 감상하기 위해 시조가 담긴 당시의 시대상과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책이야. 사전을 찾아보니 "시조라는 명칭은 '시절가조'(時節歌調)에서 나온 것으로 '시절가'란 '이 시절의 노래'라는 말"이라고 해. 그러니까 시조는 그 시절을 담고 있다는 말이지. 고시조는 "시조가 발생한 고려 중엽부터 갑오개혁 이전까지 창작된 시조"라고 하니 이 책에서 우리는 주로 조선과 고구려 말엽 시절(역사)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런데 말투가 왜 그러냐고? 이 책의 어투를 흉낸 거야. 그러니까 이 말투가 거슬린다면 이 책을 읽는 걸 다시 생각해봐. 저자는 가르치는 일에 익숙한 것 같아. 어린 독자를 가르치는 듯한 말투야. 어르신들이나 진지한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이런 말투가 어떻게 와닿을지 모르겠어. 이 책의 느낌을 맛보기로 보여주려고 이렇게 쓴 것이니 이해해주고, 여기까지만 이렇게 쓸께. 


<이야기로 읽는 고시조>는 '사랑', '정치', '자연, 풍경 그리고 풍류'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재밌는 고시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중에서 '사랑' 파트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선시대 3녀 기녀라 일컬어지는 황진이, 이매창, 홍랑의 애절의 사랑이 주를 이루는데, 세 여인의 삶을 비교하며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재밌고, 서로의 마음을 담운 아름다운 문장을 깊이 음미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또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이 담긴 사랑 노래에 당황하여 잠시 말문이 막히기도 했는데, 이 책의 이 저자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작품을 만나보겠는가 싶을 만큼 화들짝 놀랄 만한 작품과 해설도 있답니다.




구룸이 무심無心탄 말이 아마도 허랑하다

중천에 떠이셔 임의任意 단니며셔

구태야 광명光明한 날빗츨 따라가며 덥나니


먹구름이 아무 생각 없이 떠다닌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하늘 한가운데 떠 있음녀서, 제멋대로(임의로) 흘러 다니면서

일부러 밝은 햇빛(광명한 날빛)을 따라다니며, 그 밝은 빛을 엎고 가려 어둡게 하는구나. 세상을 어둡게 하는구나


고시조를 감상하는 것은 역사를 읽는 일이기도 해서, 작품에 담긴 의미를 음미하다 보면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고시조를 읽는 또다른 재미이기도 합니다. 고려말 공민왕 때 왕이나 다름없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신돈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 역사에 비선실세 정치가 지금이 처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몹시 씁쓸했습니다. "신돈은 고려라는 나라에서 자기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할 수 있었어. 자기한테 마음에 안 드는 신하들은 모두 벼슬을 빼앗고 품계도 빼앗거나 낮추구 또는 귀향도 보내고 뇌물도 받고.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 이들을 제거하면서 나라의 모든 권력을 휘어잡게 된 거지. 최영 장군마저 모함하여 훈작도 삭탈시키고 유배까지 보냈을 정도였으니 그 위세가 대단했던 거지"(149-150). 먹구름 같은 간신배 신돈이 밝은 대낮에 고려를 어둡게 하고 있다고 한탄한 이존오의 고시조를 소리내어 읊조려 보기도 했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며,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가 반복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겨봅니다.




십년十年을 경영經營하여 초려삼간草廬三間 지여내니

나 한간 달 한간에 청풍淸風 한간 맛져두고

강산江山은 들일듸 업스니 둘러 두고 보리라


십 년을 계획하여 애써서 초가삼간 오두막집을 지어놓으니

내가 한 간 차지하고, 달이 한 간 차지하고, 맑은 바람에 한 간을 맡겨두고

강과 산은 들여 놓을 데가 없으니 밖에 둘러보고 보리라


학교 다닐 때, <국어> 과목을 좋아했고 또 <고전문학 Ⅱ> 수업을 들은 덕분에 아는 '고시조'가 많이 나와 개인적으로는 읽는 재미가 더 있었습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별의 아픔 속에서 고통할 때 애절하고 아름다운 사랑노래, 나라가 어지러울 때 기개 높은 충절의 노래, 유배생활 중에 자연을 벗삼은 풍유의 노래 등 어려운 때에 후세에 남을 뛰어난 작품이 많이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조상님들의 내공에 존경심이 일기도 합니다. 역사와 함께 이런 아름다운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나름 신선한 의도로 가지고 시도한 '어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으나, 재밌게 읽히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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