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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내 삶이 놀랍고, 아름다우며 기묘하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에서 이 책을 썼다.
- 작가의 말
이 책에서 B급 감성이 느껴진다고 하면 작가에 대한 모욕일까. B급과 B급 아닌 경계에 선 작품으로 느껴지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로 세상에 반격을 가하고자 하는 작가의 광기 때문이다. 뒤틀린 세상에 대한 작가의 풍자가 신랄한데, 어쩌면 독자를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비틀린 세상의 실체가 아니라 작품마다 뿜어져 나오는 작가의 광기이다. 작가는 농담 같은 비현실적 이야기로 뒤틀린 세상을 마음껏 조롱한다. 작가가 미쳤다.
첫 장면부터 충격 그 자체였던 <대벌레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보자.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경찰이 찾아와 당신은 살해되었으니 현장을 어지럽히지 말고 죽은 채로 있으라는 황당한 명령을 내린다. 범인은 이미 자신의 범행 사실을 자백했고, 당신이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도 있다. 경찰은 당신에게 경고한다. 당신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 있다는 망상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시체일 뿐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죽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를 하나라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집안을 둘러보니 살해사건이 일어난 현장이 분명하다. 당신은 살아 있는 것일까, 죽은 것일까?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는 또 어떤가? 낯선 남자가 당신을 향해 다가와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한다. 귀찮아진 당신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에게 묻는다. 낯선 남자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당신이 되고 싶습니다." 당신은 당신으로 사는데 싫증이 났지만, 당신으로 존재하는 데 있어서 당신 보다 훨씬 타고난 재능을 갖췄다고 주장하며, 누군가 당신의 인생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더 이상 나의 삶을 살지 않고 내 삶을 누군가에게 대신 맡길 자유를 누려보겠는가? 나는 아무도 되지 않기로 하고 말이다.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날 아침, "당신은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다른 종입니다"라는 황당한 선언과 함께 자신의 삶에 대한 지배력을 빼앗기는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의 이야기, 범죄자라는 평생직장을 얻기 위해 직업소개소 상담원과의 인터뷰에 열정적으로 매달리는 남자의 이야기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 자신의 내면으로 이제 막 이사를 한 남자의 이야기 <내 집 마련하기>, 벌레 실종 사건을 은밀히 수사하며 인류에게 닥쳐올 재앙을 감지하고 도시 탈출을 시도하는 남자의 이야기 <벌레가 사라진 도시>, 실업자가 된 뒤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남자가 쓸모없는 존재를 제거하려고 하는 사회에 맞서 싸우기 위해 살해 도구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하는데, 사람들은 살인 기계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이는 그를 예술가로 인정하며 그는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전투에 계속 몰두한다는 <세계는 살인을 꿈꾼다>까지 모두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놀라운 이야기'들이다.
"당신으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됐죠? 무려 35년. 당신은 35년 동안이나 습관적으로 타성에 의해 당신으로 살아왔어요.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좋지 못한 습관인 거죠"(81).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는 '정상인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니 꺼 인 듯, 니 꺼 아닌, 니 꺼 같은 나'라는 노랫말 속에 '아직은 네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처럼, '정상인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세상'이라는 말 속에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의심과 폭로가 숨어 있다. 마치 "내 이야기가 황당하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황당할 껄!"이라고 외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인공이 모두 남자인 것은 우연일까, 작가의 의도일까? 분명한 것은 황당한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멀쩡할수록 세상은 더 비틀어져 보인다는 것이다. 마치 드라마보다 더 진지하고, 뉴스보다 더 신랄한 개그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작가는 광기처럼 폭발하는 더 황당하고, 더 황당하고, 더 황당한 설정으로 타성에 젖은지도 모른 채 타성에 젖어 사는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깨운다.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직접 내린 문학의 정의로 설명한다.
"문학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나눈 말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또 세상에서 살아남고, 세상에 반격하고, 세상으로부터 숨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 문학은 비극적이면서도 유쾌하다"(7).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가 보여주는 비극적이면서 유쾌한 이야기는 작가가 세상에 가하는 반격이다.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사는 대벌레와 반대로, "당신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살아 있지 않다는 진실의 폭노이다. 성경에도 같은 말씀이 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는 순식간에 읽히는 책이다. "더 빨리, 더 많이 일고 싶어진다"는 아마존 리뷰에 공감을 표하는 바이다. 황당하고 기묘해서 장난처럼 느낄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작가의 표현을 빌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고, 숨 막히는 삶 속에서 숨을 트이게 하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그 어떤 작품보다 강렬했다!
"물론 미치광이를 상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광기가 필립의 생각을 새롭게 해주었다. 숨 막히는 삶 속에서 숨을 트이게 하는 낯선 돌파구와도 같았다"(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