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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 - 마음을 움직이는 시각코드의 비밀 20
신승윤 지음 / 효형출판 / 2016년 10월
평점 :
영화, 사진, 회화, 광고 등의 시각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성경에 보면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선악과의 이미지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보이는 것'에 현혹되기 쉽습니다.
<그냥 좋은 장면은 없다>는 우리의 시선, 마음을 움직이는 특별한 '코드'가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영화 <미션>에서 한 사내가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수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에 압도되는 '숨겨진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시각코드'라고 부르며, 영화 곳곳에 숨겨진 시각코드의 비밀을 공개합니다. 독자들은 "수평선 위를 걷는 주인공의 애환", "수직선을 올라가는 인물의 사연", "원과 사각형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대칭이나 대비구도로 마주 보는 사람들의 관계", "색생과 명암이 상징하는 이야기" 등 "무심히 흘려보냈던 장면" 속에 숨어 있는(5) 시각코드를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시각코드는 결국 마음을 이야기합니다"(8).
이 책은 "관찰하는 시선 하나만 있으면 이미지를 즐기는 본능을 되살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292). 예를 들어,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것, 그리하여 우리 안에는 곡선의 본능이 숨겨져 있다는 시각코드의 비밀을 하나만 알아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익숙한 풍경들이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으로 새롭게 다가오는 신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일상적이고,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더 이상 평범한 장면으로 남아 있지 않고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는 평범한 점심으로 무심코 뚝딱 비우는 칼국수 한 그릇에서도 "역행하는 수직선의 기쁨"을 발견합니다(43). 한 젓가락 감아올리는 칼국수를 보며, 폭포수를 거슬러 절벽을 오르는 '상승하는 수직선'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상승하는 수직선'에 감추어진 의미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높이 들어올린 칼국수 면발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가?" 절벽을 올라가는 장면, 즉 상승하는 수직선은 우리에게 '무엇을 지키며 살 것'인지를 묻기 때문입니다(36).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시각코드'는 결국 마음의 모양입니다. 영화 속 시각코드는 발견되기를 바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시각코드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보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잘 보는 사람이 잘 행복해진다"(8)는 저자의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영화 속 명장면에 숨겨진 의미를 포착해내듯이, 누군가는 마음의 사각형을 허물 공감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누군가는 생명력을 키워내는 원형의 에너지를 갈구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작은 시선에서 물러나 큰 관점으로 바라봐주기를 바라고, 주인공을 감싸주는 배경처럼 쓸모없는 공간으로 보이는 조각이 사실은 주인공이라는 반전을 감추고 있으며, 간절한 사랑의 선율이 누군가에게는 가슴을 난도질하는 잔인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시각디자인과 영상 정보를 전공했다는 저자는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잘 하는지,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보았던 영화는 또 보고 싶고, 보지 못했던 영화는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단순히 영상예술이나 시각디자인적인 이론을 전달하는 책은 아니어서, 어떤 글들은 재밌는 영화 이야기로 다가오고, 어떤 글들은 따뜻한 에세이, 어떤 글들은 토닥토닥 위로하는 자기계발서처럼 읽힙니다. 누구나 편안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