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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지문이 묻어 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9).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아무데도 갈 데가 없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그 순간의 '공포'를 아십니까? 딱히 일어나야 할 이유가 없는 우리 몸은 그 공포에 짓눌려 아예 마비되어 버리고 말지요.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정확히 다음 날, 저를 덮쳤던 그 아침의 공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우리는 거대한 세계의 '일개' 부품으로 소모되는 우리의 작은 인생을 멸시하지만,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함께 도는 부품이 되지 못하고 혼자만 덩그러니 떨궈졌을 때 맞닥뜨리는 고통은 차라리 죽은 자보다 못한 인생일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꺼이, 아니 필사적으로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으로 스스로 편입해 들어갑니다.
세상에는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평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요.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평균적인 인생, 보통 인생, 정상적인 인생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평균적인 생각입니다. 평균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인생에 "흙발로 쳐들어와"(70) 평균적인 인생을 살라며 성가시게 굴고 제멋대로 참견을 하지요.
<편의점 인간>은 평균적 인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편의점 알바생의 이야기입니다. 서른여섯 살의 '후루쿠라'는 취직도 하지 않고, "집요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같은 가게(편의점)에서 18년 째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편의점 인간>이라는 소설로 제155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도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후루쿠라'가 편의점 일에 그토록 필사적인 이유는, 어릴 때부터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이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지치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됩니다"(98). 자신을 걱정하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고, '편의점'은 그녀가 사회에 편입해들어가는 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편의점 인간>은 세상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부품 인생의 '안도'와 '불안'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 작품이 "아쿠타가와 역사상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편의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은 후루쿠라에게 유일하게 안도감을 주는 세상입니다. 그곳에서는 대학생이든, 주부이든, 밴드를 하는 젊은 남자든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메뉴얼을 따르는 "점원이라는 균일한 생물"(23)로 다시 만들어집니다. 18년 동안이나 한 가게에서 일한 후루쿠라에게 편의점은 예측 가능한 세상이고, 대응 가능한 세상이고,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41)이기에, 편의점 안에서만은 보통의 인간이라고 느끼며 '안도'합니다. "아침이 되면 또 나는 점원이 되어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다. 그것만이 나를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30). 손님의 미세한 몸짓이나 시선을 자동으로 알아차리고, 눈과 귀는 손님의 작은 움직임이나 의사를 포착하는 중요한 센서가 되고, 내일 아침에도 편의점에서 일하기 위해 잠을 자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후루크라는 그렇게 편의점과 연결된 "편의점 인간"이 되어 갔습니다.
부품은 언제든 교체될 수 있고, 오랜 세월 한 가지 기능에 길들여진 부품은 교체된 후 어디에도 쓸모가 없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말입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내 몸은 편의점의 것이었다. 그런 처지에서 해방되자,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져 버렸다"(170).
보통 인생이 되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했지만, 18년이 넘도록 정규직 취직도 하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편의점 알바만 계속하고 있는 '후루쿠라'는 평균적 인생이 되라고 부추기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두게 됩니다. 하지만 편의점 인간이 되어버린 그녀가 편의점을 그만 두는 것은 곧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했습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잃어버린 후루쿠라는오늘이 무슨 요일인지도,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른 채, 몇 시에 일어나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무엇을 기준으로 자기 몸을 움직이면 좋을 지도 알 수 없기 되어버리고 맙니다.
어쩌면 '편의점 인간'이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자신의 빈틈이 간단하게 메워져 버렸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18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유능하게 일했던 점원이 갑자기 편의점을 그만 두었는데도, 가게의 세포가 또 하나 교체되었을 뿐, 편의점은 너무도 '정상적'으로 잘 돌아갑니다.
당신의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요? '편의점 인간'에게는 편의점이라는 작은 상자 같은 공간이 우주의 전부였습니다. 모든 리듬은 편의점 시계에 맞추어져 있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면 안전한 세상. 그러나 규칙을 깨는 일은 용납되지 않으며, 이물질이 되면 배제를 당하고, 간단하게 교체될 수밖에 없는, 편의점을 떠나서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수 없는 불안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
요즘 우리는 '글로벌 세상'에서 산다고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 '편의점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 우리에게 '박사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박사'는 자기 전공(자기 연구주제)밖에 모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넓다고 하지만 우리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곳은, 내가 아는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작은 일터뿐입니다. 그래서 한 번도 세상밖으로 나가본 적 없는 산골 소녀처럼, 우리는 익숙한 일자리에서 떨궈지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도 모릅니다. 유능한 부품 인생일수록 퇴직과 노년은 더 큰 고통으로 덮쳐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의점을 떠나서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글로벌한 세상은 훨씬 더 많은 불안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대한 정글일 뿐입니다.
세계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 필사적으로 편입해들어갈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무능한 일탈자로 남을 것인가? 어쩌면 18년째 편의점 알바를 계속 하며 글을 쓴다는 작가가, "우습고, 귀엽고, 대담하고, 치밀해" 보이는 그녀의 이 작품이 서늘하도록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어떤 인생을 선택하든 필사적인 사람도, 저항하는 사람도, 무능한 일탈자도 결국은 이 거대한 세계에서 '편의점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