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226).



우 박정민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생긴 것은 영화 <동주> 인터뷰를 보고 나서입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성보라의 (구) 남친으로 나왔을 때도, <전설의 주먹>에서 황정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을 때도 배우 박정민은 낯은 익은데 잘은 모르겠는 그런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동주> 인터뷰에서 '송몽규'를 연기하기 위해 송몽규의 옛집과 묘소가 있는 용정을 자비로 다녀왔다고 수줍게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무엇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들끓지 않는 열정이었습니다. 어쩌면 들끓지 않아서 더 매섭게 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동주>를 본 것이 그 인터뷰를 보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박정민이 곧 송몽규였고 송몽규가 곧 박정민이었던, 허공의 먼지까지도 한 편의 시어 같았던 흑백영상이 실존인물뿐 아니라 그 영화에 나온 사람들,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까지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 내게, 이 책이 반가웠던 이유말입니다.


<쓸 만한 인간>은 글을 한번 써보라는 <topclass>(잡지사)의 제안에, "아버지가 주는 돈 말고 내 돈으로 PC방을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결과물입니다. 배우 박정민의 숨겨진(!) 글솜씨를 알아본 건 그 잡지사에 근무했던, 지금은 TV조선으로 자리를 옮긴 박소영 기자라고 합니다. "저는 '글은 곧 그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믿어요. 박정민을 좋아하는 분들이 칼럼을 통해 박정민을 좀 더 잘 알게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해요"(186). 싸이월드만 보고 탁월한 글쟁이를 알아보는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서, 어쩌면 배우 박정민의 진자도 먼저 알아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 바람대로 그의 글을 통해 배우 박정민을 더 알게 됐고, 더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책을 읽으며 배우 '박원상'이 누구인지 찾아보았고(죄송해요. 이번 기회에 성함을 확실하게 외웠습니다!), 연기를 위해 그가 중퇴한 명문대는 어디인지 찾아보았고(와우~ 고려대!), 그의 벨소리이기도 하다는 Des'ree(데즈레)의 'You gotta be'(유가다비)라는 노래를 찾아듣기도 했습니다. 아래와 같은 문장에 밑줄을 긋기도 했고(실제로 밑줄을 그은 문장은 이보다 훨씬 많으며!), 영화 <오피스>를 꼭 챙겨보려고 메모를 해두기도 했습니다.



글을 말로 옮기는 일을 하다가 말을 글로 옮기고 싶어졌다(저자의 말 中에서).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지찔했었다(70).
당신도 누군가에게는 의외로 잘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65).
모두가 강팀에 속해 있을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팀을 강팀으로 만들 수는 있을 거다(145).
모르는 것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235).



<쓸 만한 인간>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학창시절 박정민은 영화 <피 끓는 청춘>에서 그가 맡았던 '황규'와 가까워 보입니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지만, 진지함 속에 개구진 모습이 있고, 개구진 모습 속에 또 진지한 구석이 있는, 바닥까지 절망했다가도 또 튕겨오를 줄 아는, 같이 여행 다니면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절대 같이 여행 가자고 하지 않을, 혼자 떠나는 여행을 즐기는 그런 남자라고나 할까요.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면서도 공부는 잘하고, 찌질한가 싶은데 또 꽤 도전적이고, 진중한 구석도 있지만 대체로 웃깁니다! 뭐 이런 식으로!



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면 큰어머니들이 "우리 정민이는 인물이 훤해. 잘생겨서 좋겠다"라고 습관처럼 그 실언들을 내뱉지만 않으셨어도 본인은 이 자리에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솔직히 정민이가 잘 생긴 건 아니지. 연기파지 연기파"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회피 스킬 +1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68).



<쓸 만한 인간>은 이 땅의 모든 청춘들에게(나이와 상관 없이 청춘의 피가 끓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보내는 책입니다. 대단한 그 누군가가 대단한 교훈을 남기며 보통 사람들을 기죽이는 그런 위로가 아니라,  소소한 삶의 경험들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그런 위로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경험들까지. 



살고는 있구나. 굉장히 의외지만 다들 살아있긴 하구나.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는 있구나. ... 살아있다는 건 경험 속에 있다는 거다. 나는 지금 노트북에 묻은 짜장면 국물을 한 달 동안 지우지 않으면 결국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다. 난 맨날 경험해. 경험쟁이야. 아무튼 경험하다 보면 아프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렇다. 새롭게 배우기도 하고 적응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괜찮아지는 것일 테다. ...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만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생각지도 못하게 당신 주변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 주변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놀라운 일이다. 굉장히 의외다. 살아있을 줄 몰랐는데, 살아있다는 거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그냥, 고마워하면 된다.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갑자기 보고 싶어졌을 때 볼 수는 있게 살아준 당신이 참 고맙다, 라고 생각하자는 거다(63-65).


이 책을 읽고 처음엔 배우 박정민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서평을 빙자하여). 진심으로 응원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오랫만에 발동한 팬심입니다. 글을 보고 좋아진 사람은 헤어나올 길이 없으니, 출연하는 작품마다 따뜻한 시선으로,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겠다는 약속을 여기에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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