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라는 명성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의 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일단 그림(일러스트)이 굉장히 화려하고 섬세합니다. 그림책이요, 어린이동화책이라
글만 읽으면 5분도 안 되어 후다닥 읽어버릴 수 있지만, 그림을 구석구석까지 찬찬히 훑어보며 그림 안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읽어내려면 시간이 꽤
걸리는 책입니다. 그림이 (글로 다 설명되어지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그림책'이나 '아이들의
것'이라고 하면, 특히 일러스트 같은 부분은 조악하게 만들어진 것이 흔했는데, 요즘은 '어린이용'의 수준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예전에는
어린아이의 수준(?)이 무시되었다면, 지금은 어린아이의 것일수록 더 많은 공을 들입니다. 그 만큼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어린이 시장이 넓기 때문이겠지요? 출판계가 불황일 때도 부모들이 자신을 위해서는 책을 사지 않아도, 아이들을 위해서는 지갑을 기꺼이 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데르센이나 이솝처럼 쉬운
이름이었만 좋았을 텐데 아이들은 그 이름을 부르기도 힘든) '스벤 누르드크비스트'라는 이름의 건축가 출신의 그림책 작가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상당히 수준높은 아동문학'이라는 평이 절로 나올 만큼 깊이가 있습니다. <누나는
어디에>라는 짧은 동화를 읽으면서도 "우리가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가 이런 것이었지"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릿했습니다.
누나를
찾아 떠나는 대모험, 비밀의 열쇠는 내 안에 있어요!
"누나가 또
사라졌어요!"
누나는 곧잘 사라집니다. 그래서 동생은
누나를 늘 찾아다녀야 합니다. 동생도 함께 데리고 다니면 좋겠지만, 이
나이 때에는 동생이
귀찮을 때가 많지요. 동생은 사라진 누나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할아버지는 누나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누나가 어디 있을지는 누구보다도 네(동생)가 잘 알 거야." 할어버지의 말을
듣고 동생은 누나가 있을 만한 곳을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의 이 말은 우리에게도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는 비밀의 열쇠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을 자꾸만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누나는 할어버지 정원을 좋아해요. 배나무에
새들이랑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먼저 거기 가봐요."
동생은 누나가 좋아하는 곳, 누가가 좋아하는
일, 누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누나가 있을 만한 곳에 모두 가봅니다. 누나는 할아버지 정원을 좋아하고, 새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새들의 말도 다
알아들 수 있대요. 또 누나는 갈매기처럼 하늘 높이 구름 사이를 날고 싶다고 했고, 도시의 높은 빌딩 같은 높은 곳을 좋아하고, 산이란 산은 다
오르고 동굴이란 동굴은 다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누나는 참 엉뚱한 것 같아요. 할아버지는 누나가 하는 말을 모두 믿지는 말라고
하네요.
어쩌다
어른이 된 후에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요?
동생과 함께 누나를 열심히 찾아다니다 보니,
그림 속 어딘가에 누나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누나를 찾아다니다 참 재밌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타고 인간들의 박물관
위를 날아가며 동생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누나는 언젠가 새가 먹다 남긴 솔방울을
발견했대요. 베개 옆 상자에 오랫동안 두었다가 버렸대요." 동생의 말을 들으니, 인간들이 박물관이 꼭 누나가 솔방울을 간직해두었던 상자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동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어쩌면 하루종일 인상을 찌푸리며 사는 어른들의 '진지한' 세계가
훨씬 더 유치해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이든 즐거운 놀이가 되었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무서운 세상도 모두가 함께 모여 놀 수 있는 재밌는 놀이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놀랄만한
사건은 기억을 더 풍부하고 촘촘하게 한다. 많은 것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그것을 정보로 저장하면서 기억을 풍부하게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어른들은 기억으로 남길 만한 새로운 것이 별로 없어서 시간을 빠르게 느낀다."
<나를 위한 시간 혁명>이란
책에서 읽은 글입니다. 어른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시간이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 투덜거리지요. 그런데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가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을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시간을 붙잡을 수 있는 비밀의 문도 열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누나처럼, 누나를 찾아나선 동생처럼 "안전지대를
벗어나 매일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어쩌다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여전히 "누나"가 필요해요!
세상을 낯설게 보는 누나말입니다. 누나는
절대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아요. 세상을 낯설게 보는 누나에게는 매일이 새롭고, 매일이 새로운 경험이니까요. <누나는 어디에>라는 이
작품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고, 새로운, 어린아이의 두근거리는 세상을 열어 보여줍니다. 우리도 그렇게 세상과 마주하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하고, 성난 '개'를 무서워하기도 하고, 겨루기도 하고, 장기를 뽐내기도
하고, 나만의 비밀을
만들기도 하고,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기도 하면서 나만의 꿈을 키웠지요.
이 그림책을 읽으며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보는
법을 다시 배웠습니다. 매일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더라고요. 다 안다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을 낯설게 보는 것입니다!
<누나는 어디에>는 얇은
그림책이지만 '문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책이고, 어린이동화이지만 어른들에게도 유쾌한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는 책이고, 책값은 좀 나가지만 아름다운 것을 위해 한
번쯤 사치를 부려보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동화는 참 힘이 셉니다. 그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