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 -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오민석 지음 / 살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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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이렇게 가도 좋았다. 이 책 한 권 읽느라 가을이 가버린데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시도 아름다웠지만, 시만큼이나 시를 읽어주는 글도 함축적이고 아름다웠기에. 온 가을을 다 허비할 것처럼 느리게 <아침 詩시>를 읽는 동안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이 시들에 비하면 내가 쏟아내는 말들은 얼마나 비루한가. 정결의식처럼 나는 시를 읽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로 씻기워졌다. 시로 씻긴 생각과 말과 마음. 이토록 개운할 줄이야.



<아침 詩시>에서 우리는 인생, 사랑, 풍경이라는 3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진 시를 만난다. 우리의 시도 있고, 외쿡의 시도 있고, 이미 알려진 시도 있지만, 오민석 시인이 직접 번역해 소개해주는 시들처럼 대부분 낯선 시들을 만난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시들조차도 낯설다. 시를 읽어주는 오민석 시인에 의해 시가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시의 언어 속에 "이렇게 많은 의미(비밀)들이 숨어 있다니."


시와 그냥 만나면 될 줄 알았지, 시를 소개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 우리는 이미 시를 지겹도록 분석했고, 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분석을 죽도록 외웠으니까. 그런데 <아침 詩시>는 시를 그렇게 만나서는 안 되었다는 걸 알게 모르게 꼬집어준다. 읽는 이도 저절로 시인이 되는 시 읽기의 비밀을 참으로 간결하고 감각적으로 살며시 풀어놓는다.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아침 詩시>는 미리 답을 알려주었으므로, 이 질문은 답을 먼저 알고 난 뒤에 逆으로 내게 주어진 깨달음의 결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내가 찾은 첫 번째 답은 우리는 세계를 해석하는 시인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세계를 해석하는 시의 언어가 필요한 것은, 시의 언어로 보아야 보이지 않는 실재, 전복된 가치, 왜곡된 미의 의미가 비로서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저마다 다른 처지에서 세계를 해석한다. 동일한 세계가 어떤 사람에겐 지옥이고 어떤 사람에겐 천국이다. 세계는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오는 것이아니라, 우리가 내미는 해석의 통로를 경유해 온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결과이다. 해석이 세계를 만든다(37). 


그리하여 모든 사회적 갈등은 사실상 말(언어) 위에서 이루어진다. 언어는 해석을 기다린다. 아무렇게나 건드릴 일이 아니다(37).


시를 읽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존재는 본질적으로 관계라는 것과 타자의 아픔을 공유함으로 존재를 사랑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시는 참으로 부드럽게, 생의 진리를 일깨운다. 아름다움 속에서 눈 뜨는 '앎'은 내면에, 존재에 참으로 깊이 파고든다. 그 '앎'은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최악의 시간에 스스로 "쓰레기"처럼 유기 되기를 바랄 때가 있다. 놀랍게도 우리는 이런 고통의 정점에서 타자의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다. 문학이 삶의 아픔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픔을 경유하지 않고는 존재를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통은 (고통스러운) 특권이다. (자신이) "이대로 사라져도 그만이라 생각될 때" 시인은 놀랍게도 타인의 아픔, 버려진 아기들을 떠올린다.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들의 울음은 '죄악덩어리세상"을 향해 울리는 "사이렌 소리"다. 고로 자신을 유기하는 것도 죄다(81).


그리고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 하나는, 시가 주는 위안 때문이 아닐까. "자연의 사소한 움직임이 일시에 우리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놓는" 것처럼, 짧은 싯구 하나가 "내 가슴의 / 기분이 달라지고 / 내가 후회했던 날의 / 어떤 부분을 구해"주기도 한다.



자연의 사소한 움직임이 일시에 우리 마음의 풍경을 바꾸어놓는 경우가 있다. 우울이 바람 한 줌을 만나 사라지는 경험, 쏟아지는 눈가루가 죽음을 생으로 전환시키는 경험. 푸른 하늘에서 영원의 의미를 포획하는 경험. 푸르른 난의 잎에서 문장을 발견하는 경험. 그러니 의식하든 못하든 우리는 세상의 모든 만물들과 친척이다. 귀한 것들, 영원해라(207).


눈가루가 쏟아지는 아주 사소한 일이 어찌 보면 죽음 가까이에 있던 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니 인생이란 큰 사건으로만 재단할 일이 아니다(207).


끝으로, 들려주고 싶은 시가 많지만 들려주고 싶은 시로 '워낭'을 골라보았다. 메마른 가슴을 눈물로 적셔주는 것도 시이고, 그 눈물을 씻어주는 것도 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을에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다면 <아침 詩시>를 추천해주고 싶다. 단풍으로 물드는 가을처럼, 시의 언어로 물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워낭


늙은 소의 잔등 위에 막걸리 한 병 얹어놓고

괜히, 또 쓸데없이

그걸 쓰다듬는 저놈의 노을


한바탕 붉게 울먹이는 건 또 뭐람


김솔, <상처가 門이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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