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대신 세계일주 - 대한민국 미친 고3, 702일간 세계를 떠돌다
박웅 지음 / 상상출판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독서였다. 외국에서 보아둔 책들을 모두 사서 읽고 있다. 학교도 안 가고 직장도 안 다니니 시간이 많다.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다음 행보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다. 어린 나이에 강연도 하고 책도 쓰는 건, 내가 잘생겨서도 아니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서도 아니다. 잘생긴 사람은 많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사람은 더 많다. 유일한 이유는 내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261).



대한민국 미친 고3, 702일간 세계를 떠돌다


돌이켜 보면, 목표하는 대학교에 떨어지는 것보다, 아니 그냥 대학이라는 델 가지 못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던 건 궤도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는' 대학, '다들 그렇게 사는' 평범한 성공 가도에서 벗어나는 것말이다. 여기 그 궤도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한 청년이 있다. 수능을 2주 앞둔 고3이면서도, 남들 다 보는 수능을 보지 않고 호주로 날아가, 청소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왔다. 


이 청년의 행보가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수능대신 세계일주>라는 발칙한 제목이, 꿈꾸었으나 시도해보지 못한 나의 꿈, 그럼에도 내 안에 여전히 꿈틀거리는 반항심, 사는 내내 습관처럼 억눌러야 했던 일탈 충동을 자극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까 이 청년에 대한 호기심은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낸 것에 대한 질투이며,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은 불안이기도 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돈은 얼마를 벌었고 얼마를 썼는지, 어떻게 여행을 했는지를 묻는 것은 나에게도 현실이 되지 않을까 실현가능성을 확인받고 싶은 것이고, 그래서 뭘 얻었는데, 이제 뭘 할 건데를 묻는 것은 남들 가는대로 따라온, 그와 다른 선택을 한 나의 오늘을 보상받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비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 무모함을 가장 부러워 할 수도 있겠지만, <수능대신 세계일주>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모함이 아니라, 삶은 치열한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떠올렸던 것은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였다.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계일주를 결행한 이 청년의 생활신조, 삶의 철학도 "비관적인 현실주의자가 되지 말되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도 되지 말자"(255)이다.










● 무언가를 얻었어야 했다. 대학을 가지 않았고 독기에 가득 차 돈에 목숨을 걸고 살던 내 스무 살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했다. 나는 세계일주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얻어진 내 결론은 '기억'이다(5).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702일 동안 육대주, 24개국을 여행하며 얻은 것들, 20살과 22살 사이에 새겨진 '기억'을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왜 이런 인생을 선택했고, 이런 인생을 살면 어떤 기분이며, 이런 인생이 과연 추천할 만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아나가는, '진행형'의 이야기이다. 


여긴에 여행 정보대신 스무 살 인생이 마주한 낯선 세계와 치열한 고민이 녹아 있다. "2014년 1월과 2015년 12월 사이의 나는 분명 살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모든 시기를 합쳐도 이기지 못할 만큼 절절하게"(16-17). 교과서가 아니라 리조트 청소부로 일하며 배운 생생한 삶의 교훈이 있다. "그때 나는 세상에 하찮은 일이란 없고 버리는 시간 또한 없음을 깨달았다"(38). 얻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702일 동안 나는 물질적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한인 사장에게 돈을 떼이기도 했고 호주에서 9개월여간 뼈 빠지게 일해 모은 돈을 모두 쓴 것도 모자라 엄마에게 빌린 400만 원의 채무와 함께 인천을 밟았다"(5).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는 자신이 '금수저'가 아니라는 걸 밝히고, 다른 과목은 몰라도 영어는 상당히 잘했으며, 상식과 언변에 능한 청소년이었다는 걸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구를 한 바퀴 돌아와 강연을 하고 책을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그가 새로운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이 새로운 방향(가능성)을 가리키는 하나의 표지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 나의 곰스크는 세계일주였다. 세계일주는 이상향이었고 가서 닿아야만 하는 곳이었다. 거기 내 꿈이 있었고 내 미래가 있었다. 가고 싶은 곰스크가 있다는 사실은 행운인 동시에 무서운 일이었다(188).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나의 곰스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곰스크라는 곳을 꿈꾸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남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곰스크라는 도시에 대해 듣는다. 아버지는 그에게 말한다. '곰스크는 이상향이다. 곰스크는 완벽한 도시이다. 곰스크는 가야 할 곳이다'라고. 남자는 곰스크로 가리라고 어려서부터 굳게 다짐한다. 시간이 흘러 남자는 결혼을 하고 아내와 함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잠시 기차가 정거하는 동안 아내와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다 그만 기차를 놓쳐 어쩔 수 없이 그 마을에 머물게 된다. 돈도, 잘 곳도 없었기에 부부는 그곳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방을 얻는다. 곧, 방에는 가구도 들어선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그렇게 남자는 마울에 머문다. 떠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마다 아내가 임신을 하는 등 여러 이유가 생기곤 했지만, 남자는 곰스크로 떠날 꿈을 놓지 않았다. 그 사이 남자는 중년이 되었으며 마을의 번듯한 선생이 되었고 자식들도 생겼다. 기차표를 살 돈과 그곳에 당분간 정착할 돈도 모은지 오래다. 남자는 아직도 곰스크를 꿈꾼다.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186-187).





● 광화문 근처의 독립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보던 시간이 쌓여 길 위에 떠돌던 나를 낳았고 길 위를 떠돌던 시간이 쌓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낳았다. 시간이 쌓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낳았다. 시간이 쌓여 시기가 되는 마법 앞에서 나는 우연과 필연을 구분하지 못한다. 지금 이 시기가 언제 끝날 것이며 이 시기 다움에 어떤 시기가 올 것인지도 알지 못한다. 생의 불확실을 따라 부유하면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213).

열병 같았던 나의 청소년기는 언제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영화의 한 장면과 함께 기억된다. 하루 종일 다 같이 한 방향으로만 돌고 도는 희망 잃은 사람들. 거꾸로 도는 주인공 때문에 더 미쳐 날뛰었던 광기. 청소년기에 내 눈에 비친 세상이 그랬다. 이 길이 옳은 길이다 정해놓고 한 길로만 우리를 몰아대는 세상, 똑같은 성공을 강요하면서도 동시에 어차피 모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을 함께 안겨주었던 학교, 그러나 그 궤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실패자라도 서슴없이 낙인을 찍어대는 세상.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그런 세상에 너는 여태 무얼 하며 살았느냐고 물어온다. 이제라도 무엇에 내 시간을 오롯이 바칠 것인가를 물어온다. 그리고 혹시라도 꿈꾸는 길이 있다면, 한 방에 모든 걸 뒤집으려 시도하지 말고, 오늘에 충실하며 작은 변화를 시도하라는 속삭임을 들었다. 또 하나, "될 놈과 안 될 놈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바로 '자기 확신'이며, "본인이 스스로 될 놈이라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될 놈"이라는 힘찬 격려와 함께(222). 


<수능대신 세계일주>, 내겐 아직 너무 어린 청년의 책인데 진지하고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지 않고 치기어린 선택이었고, 객기 가득한 여행이었다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오만과 편견이라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무모한 도전과 결연한 실행은 오히려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다는 걸 이제야 배운다. 수능을 앞둔 청소년들에게, 수능볼 기회조차 없는 청소년들에게, 수능을 포기한 청년들에게, 수능 후에도 여전히 목표를 설정하지 못한 청년들에게, 꿈을 포기하고 사는 모든 인생들에게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하는 의미로 기꺼이 별 다섯을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