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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카린 랑베르 지음, 류재화 옮김 / 레드스톤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우린 선택했어. 우리 인생에 남자는 없어!"(51)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 얼마전 종용한 드라마 <청춘시대>의 셰어하우스와 닮았다. 우아한 여왕 벌 같은 집주인 할머니,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에 모여사는 여자들, 그리고 금남이라는 금기사항.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에 사는 여자들은 청춘이 아니는 것(그래도 줄리엣은 예외라고 치자)과 집주인이 부여한 '금남' 조항이 조금 더 엄격하다는 것. 이 건물에 사는 유일한 수컷은 고양이 장-피에르뿐이며, 배관공도 전기공도 오직 여자들만 출입이 가능하다. "그곳 여자들은 다 매력적이야. 서로 아주 다르지. 우릴 하나로 묶어주는 건 같은 선택을 했다는 점이야. 우리 인생에 남자는 없어, 바로 그거야. 그게 우리한테 적절해"(21).
시몬, 주세피나, 로잘리, 그리고 인도로 여행을 떠난 카를라의 소개로 새로 입주하게 된 줄리엣. 남자를 포기한다는 것은 곧 사랑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사랑을 포기한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줄리엣은 이들의 선택에 계속 의문을 갖는다. 그녀들도 이 집에 입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자들을 그리워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디에고 없이 입주해야 하는 것은 가슴이 옥죄어 오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늘 같이 하던 모든 것을 보내고, 하루를 이야기해줄 사람이 더는 없고, 요리를 해줄 사람도, 애지중지할 사람도, 사랑해줄 사람도 더는 없게 되는 일이었다"(57). 그러나 시몬, 주세피나, 로잘리에게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은 사랑의 슬픔을 위로하는 안식처였다.
"사랑을 포기한 건 아냐. 사랑 없이는 못 사는, 그런 미친 희망을 포기한 거지(67).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행복해죽겠는데, 사랑에 겨워죽겠는데, 스스로 행복을 걷어차버리고,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에 숨겨진 사연이 드러날 때,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학대와 배신과 결핍, 어쩌면,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에 산다는 건, 호기롭게 사랑(남자)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사실은 아프게 인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난 사랑을 포지하지 않았어! 사랑이 날 원하지 않아, 제기랄"(135).
"하지만 사랑을 뭘로 대체하죠?"(69)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이 사는 집>은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벨기에 신인 소설상 수상에 빛나는 통통 튀는 소설이다. 진열된 상품에서 물건을 고르듯 클릭으로 사랑을 찾는 리얼리티까지 신인 작가의 톡톡 튀는 감각이 신선하다. 벨기에 출신의 낯선 작가이지만, 문화와 언어와 지역을 초월하여 이토록 적날하게 정서와 감각과 고민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놀라움이다.
그러나 그런 신선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통속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늘 통속적이라 쳐도, 이 책의 결말은 더욱 통속적이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신다는 혼밥, 혼술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한 시대이지만, 남자를 포기한 여자들도 모여 살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 주었던 것처럼, 결국 혼자 서는 살 수 없다는 것. 127년마다 한 번 핀다는 대나무꽃을 기다려온 여왕 벌(집주인 할머니)처럼, 결국 우리는 계속 사랑을 꿈꿀 수밖에 없다는 것. "127년마다, 몇몇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아주 유일한 순간이지. 세계 곳곳의 모든 대나무들이 동시에 꽃을 피워. 어디 있든, 언제 심어졌든 상관없이. 그리고 얼마 있으면, 지쳐 죽지. 모두가 동시에. 만일 그날 바람이 불면, 대나무들이 우는 소리를 듣게 될 거야"(32-33).
127년을 기다려 핀 대나무꽃처럼 결국 시들어버릴지라도, 그 덧없음을 깨닫게 되더라도, 거짓에 속아 울게 되더라도, 하루아침에 확 변해버린 내 마음에 그가 아니라 내가 더 놀라게 될지라도, 사랑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는 없다. 사랑은 여전히 설레여야 한다.
결국 우리는 다시 사랑을 꿈꿀 수밖에 없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위대한 인생은 살지 못하더라도 위대한 사랑은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