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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 -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ㅣ 인문플러스 동양고전 100선
문이원 엮음, 신연우 감수, 제갈량 / 동아일보사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제갈량이 말하다 _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름답다." 어릴 때부터 가졌던 생활신조입니다. 공동체생활,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데 앉아 있는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게 되는지 선명하게 보았고, 뻐져리게 느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리더'라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문제 있는 학생 한 명, 골 때리는 직원 한 명이 있어도 전체의 물을 흐리겠지만, '교육자'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 '선생'의 자리에 앉아 있고, '리더'의 자질이 없는 상사가 '높은 자리'를 꿰찮고 앉아 있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이를 통해 배운 한 가지는 앞으로도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든 "여기가 정말 내가 있어야 자리인가"를 물으며,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늘 리더를 탓하기만 했던 제가 리더십을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본격적으로 리더의 자리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큰 문제 없이 친구들에게도 늘 인기가 많았고, 입사를 해서도 사랑받는 막내였는데, 리더의 자리에 앉고 나니 달랐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로 이해받지 못한다는 것이 충격이었고,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싫어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 엄청난 상처였습니다. <장원>을 읽게 된 것도 그런 관심의 연장선입니다.
<장원>은 제갈량이 쓴 것으로 알려진 병법서입니다. "장수의 길을 논하는 전문적인 군사 저작"인데, 이를 리더십 이론으로 확대 적용한 것입니다. 전략가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제갈량이 말하는 리더십,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계에서도 리더십 이론이 가장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곳 중에 하나가 '군대'인 것을 보면, 리더십의 중요성과 절실함을 군대만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장원>(將苑)이라는 책 제목은 "장수의 정원으로 번역"됩니다. 황실가의 정원은 제왕들이 여흥하면서 즐기는 사냥터로, 군사력의 위세를 드러내는 중요한 장소로 활용되었고, 그리하여 나라의 최고 정예들이 정원으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4-5). 정원은 "황제가 가진 권력의 정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실권자들의 힘겨루기와 다양한 역학 관계가 공존했던 제왕의 정원에서 최고의 리더로 선택된 장수와 그의 마음가짐을 지시하는 책"이라는 것이 편저자의 설명입니다.
<장원>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먼저, 리더(장수)의 책임과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가 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편 중 하나가 '출사'(장군의 출정) 장면입니다. '출사'를 읽어보면, "고작 한 사람(장수)을 임명하는 데 이토록 정성스럽고 거창한 의례를 치르는 까닭은 무엇일까?"(82) 하는 물음이 저절로 생길만큼, 엄청만 임명식이 거행됩니다. 군주는 3일 동안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장수에게 손수 무기를 내려주며, 군주가 무릎걸음으로 출정하는 장수의 수레를 따라가며 바퀴를 밀어 장수를 전송합니다(80). 그만큼 장수 한 명을 임명하는 일이 "백성의 생사와 직결된 국가의 중대사안"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국가에 위기가 닥친 전시 상황에서는 장수 한 사람의 책임이 이처럼 막중했으며, 그 책임이 막중한 만큼 국력을 좌우할 수 있는 권력도 총집중되었습니다. <정원>은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수도 있었던 슈퍼리더이니만큼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역량(리더십)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사람의 형세든 사람의 의지든, 언제나 근원은 사람이다. 사람을 떠나서는 위엄도 공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원>>의 상편은 장수의 권한과 위세를 이야기하는 <병권>으로 시작하고 사람의 형세와 의지를 이야기하는 <심인>으로 마무리된다. 장수가 지닌 직권은 그가 이끄는 사람들의 바람이나 추구에 부합할 때에만 본연의 위력을 다할 수 있다. 지위는 장수에게 권한과 권력을 제공하지만, 궁극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결국 "훌륭한 리디러십은 권한의 수준이 아니라 영향력의 수준에 관한 것"이다(157).
병법서라는 장르상 위기의 리더십, 군대리더십, 셀프리더십이라고 구분지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리더십의 정수는 리더의 마음가짐이요, 사랑의 마음을 얻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략과 전술, 지형과 날씨, 무기와 보급품 등 전쟁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결국 모든 조직과 마찬가지로 군대도 사람으로 구성되고 사람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니까요. <장원>도 계속해서 이를 강조합니다. "사람을 알아보고 판단하는 것이 장수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31)이며, 군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병사들과 소통해야 부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들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뛰어난 인재개발자이자 인사관리자여야 한다는 말은 조직을 이끄는 데 인적자원 관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91).
또한 "병사들과 모든 것을 동등하게라는 모토는 장수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의 기초 가운데 기초"(267)라는 것도 역설합니다.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잠자리에서 자고, 상벌의 원칙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니 특별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부터가 잘못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원>을 읽으며 그동안 실패한 리더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곱씹어 보니, 모두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리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을까요? 이 책의 가르침을 적용해보자면, 비전(목표)을 공유하기보다 우격다짐으로 지시하기에 바빴고, 상벌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공정함보다는 사사로움이 앞섰으며, 모든 일에 모범을 보이기보다 특별 대우를 받기 원했고, 팀원들이나 부하를 가족이나 동료가 아니라 장기판의 졸로 보며, 졸의 희생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직위를 이용해 사사로운 이를 탐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사실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리더십만큼이나 펠로우십이 강조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리더 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병든 조직문화 안에서는 리더십을 꽃피우기 힘드니까요. 물론 그 조직문화를 바꿔야 할 책임이 다시 리더에게 지워지기는 합니다. <장원>을 읽으며 확실하게 깨달은 한 가지는 이것입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답답해하고 한심해하고 서운해하고 화를 내기 전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에 눈 뜨는 것, 리더십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배움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잊지 않는 데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