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날
구오징 글.그림 / 미디어창비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뉴욕 타임스

올해의 베스트 그림책




첫 문장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습니다. 이 그림책이 주는 감동과 여운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은데, 이렇게 저렇게 써봐도 마음에 들지가 않네요. 그냥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가 아닌 날>은 "뉴욕 타임스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고 여러 매체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를 모"은 그림책입니다. 가장 독특한 점은 '글'(대사와 설명)이 한 글자도 없는 '진짜' 그림책이라는 것입니다. <혼자가 아닌 날>을 보며 대사 없이 리듬과 비트, 상황만으로 함께 웃고 울 수 있다는 '난타 공연'을 떠올렸습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 때 외동아들로 태어난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림만으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이처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기만 합니다. 시대와 세대와 지역과 문화와 언어를 초월하여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마치 창조주가 우리 안에 심어놓은 DNA를 마주하는 기분마저 듭니다. 


어릴 적, 외롭다고 느낄 때는 언제였나요? 이젠 낡은 옷처럼 익숙해져버린 외로움이란 녀석.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그 쨍한 충격은 기억에서 사라진지 오래지만, 어린 시절 우리는 그 외로움을 어떻게 견뎌왔던 걸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마치 타임슬립을 하는 것처럼 이 동화책은 어린 시절 혼자 울고 있는 나에게로 훌쩍 데려다주었거든요.

 

 

 








글 없는 그림책

그림을 읽는 그림책




작가 구오징은 "자신의 작품 스타일을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모든 감정을 표현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대로 이렇게 감정선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그림책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림만으로 알 수 있는 어린 아이의 감정 변화에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릅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은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혼자가 아닌 날>은 그림을 감상하듯 읽어도 좋고, 그림을 보며 보이지 않는 글을 상상하듯 읽어도 좋은 책입니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단, 서둘러 읽지 않고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오래 공감하며 읽는 것이 이 작품을 감상하는 중요 포인트일 듯합니다.







 



외로운 아이




굳게 닫힌 문 뒤로 혼나 남겨진 아이의 모습 뒤로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지은이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할머니가 돌봐주셨는데, 할머니도 바쁜 날이면 집에 혼자 남겨지곤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답니다. 


<혼자가 아닌 날>은 외로움의 감정이 무엇인지, 혼자라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어른을 위로하는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외롭게 자란 어린 아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혼자가 아닌 날>은 혼자 남겨진 어린 아이, 외롭게 자라는 어린 아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혼자 남겨져 외로움에 떨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니까요. 그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서운 것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길을 잃고 혼자 남은 아이는
가족에게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지은이는 여섯 살 때, 할머니 댁으로 가는 버스를 혼자 탄 적이 있다고 합니다. 출근하는 아버지가 버스에 태워 보냈는데, 버스에서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낯선 곳에 내리고 말았답니다. 잔뜩 겁에 질린 아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버스가 왔던 길을 도로 따라 걸었는데, 다행히 세 시간만에 할머니 댁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혼자가 아닌 날>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려졌는데, 독자는 지은이의 어린 시절을 알지 못해도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유추해갈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닌 날




지은이는 어린 시절 혼자 울며 길을 찾아 헤맸지만, <혼자가 아닌 날>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는 혼자가 다행히 혼자가 아닙니다. 어디선가 나타난 신비한 사슴을 따라 숲 속 세상 깊이 들어갑니다. 환상(상상)인듯, 아이가 꾸는 꿈인 듯한 세상이 아이 앞에 펼쳐지는데, 신비한 사슴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됩니다.







 

 



혼자라고 느낄 때




어린 아이는 사슴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에게 무사히 돌아옵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엄마 품에 편안하게 안깁니다. 사슴과 함께했던 신비한 모험은 아이의 꿈이었을까요, 상상이었을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걸까요? 우리는 아이가 사슴과 함께 보낸 시간의 비밀을 알지 못하지만, 사슴의 존재에 대해 힌트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근새근 평안한 잠을 자고 있는 아이 손에 꼭 쥐어진 사슴 인형이지요.


<혼자가 아닌 날>은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와 몽환적인 상상의 세계가 교차하는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너무도 사실적인 그림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이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진한 여운을 남기는 그림책이지요. 아이들에게 선물해도 좋은 책이지만, 어른들에게,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고픈 책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고, 그 순간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이 책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가 손에 꼭 쥐고 잠든 사슴 인형처럼, 할수만 있다면 이 세상 모든 어린이의 손에 이 책 한 권 꼭 쥐어주고 싶습니다. 그럼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마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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