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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 - 독일 최고의 과학 저널리스트가 밝혀낸 휴식의 놀라운 효과
울리히 슈나벨 지음, 김희상 옮김 / 가나출판사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끊임없이 일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그저 앞만 보고 채찍질을 해대다가 망가길 대로 망가져버린,
결코 차분히 앉아 의미를 반추하는 일이 없는,
그래서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불안에 떠는 피곤한 인생,
이게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16).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실장님이나 의사선생님 등 전문 직업을 가진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일은 하지 않고 사랑타령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하게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지적입니다. "바쁘시지요?"가 일상적인 인사말이고, "지금 통화 가능합니까?"가 통화의 첫마디이고,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게 드라마에서 흐르는 시간은 비현실적이기만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은 숨 돌릴 겨를 없이 바쁜 일상을 살며 시간 부족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그렇게 바쁘게 살며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우는 책입니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휴식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역설을 경고합니다.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집중하며 최상의 몰입을 맛보는 대신, 어딘지 모르게 산만하며 정신은 딴 데 가 있고 남의 손에 놀아나는 것만 같다.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할 여유와 효율적 근무를 위한 집중력만 잃는 것이 아니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을 잃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인생이 허비되고 있다는 것이다"(17). 또 다른 문제는 늘 피곤에 절어 살며 그토록 간절히 휴식을 원하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며, 휴식 시간마저 가치 있고, 의미 있고, 더 풍족하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느라 휴식이 또다른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장과 소비, 그리고 오락의 극대화만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성과 위주의 사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쓰라린 아픔이다"(18).
저자는 우리가 왜 우리가 걸핏하면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느낌을 갖는지, 기술력으로 절약한 시간들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시간관리 프로그램이 효율성을 높이기는 하나 정작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인지, 과거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 어째서 휴식을 누리기가 그토록 힘든 것인지 그 원인을 예리하게 통찰합니다. 원인은 우리가 "끊임없이 인생 속도를 잡아채는게 특징인 가속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251)는 것입니다. 가속화 사회는 자꾸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며 시간을 갉아먹으려 듭니다. 이러한 가속화 사회를 떠받드는 기둥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무 일상을 떠받는 일련의 생각들입니다. 다시 말해, 돈과 시간의 결합, 즉 초고속 성장 경제 논리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휘두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초고속 성장 경제 논리는 우리가 시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자는 초고속 성장 경제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시간이 곧 "휴식"이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다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역설을 설득력있게 보여줍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함몰되지 않고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도와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독일 사회학자의 저력을 보여주는 듯 탁월한 통찰과 뛰어난 문장력, 그리고 맛깔난 번역까지 더해져서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또다른 저작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탁월함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김희성'이라는 번역자의 이름도 외워두려고 합니다. 이분의 번역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의 힘>을 '휴식'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를 통해 가르쳐줍니다. 여기에는 깊은 철학적 통찰까지 담겨 있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반추해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이다. 끊임없이 무슨 일을 해야 성공하며 더 많은 돈을 벌고 더욱 그럴싸한 위신을 자랑할까 노심초사하는 대신에 이 논리를 거꾸로 돌려 지금 여기에서 우리 인생을 온전히 즐기려면 어떤 성공, 얼마나 많은 돈, 무슨 위신이 필요한지 되물어야 한다"(236).
가속화 사회의 실상과 가속화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법을 알지 못하면, 니체의 저주가 우리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아니, 그의 예언은 이미 우리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평온함의 부족으로 우리 문명은 새로운 야만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에 바쁜 사람들, 곧 평안을 모르는 사람들은 갈수록 시간 부족에 허덕이리라"(174). "휴가철에 읽어야 할 단 한 권의 책"이라는 데에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