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된 표현형 - 이기적 유전자, 그다음 이야기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장대익.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기적 유전자, 그 다음 이야기



저와 정반대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 책을 읽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논쟁적인 무신론자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믿음(신념)을 널리 퍼뜨리는 데 엄청나게 열심인 '무신론 전도자'이자, 유신론에 대해 맹렬한 적대감으로 조롱과 경멸도 서슴치 않는 전투적인 성향 때문에 '무신론 전사'라 불리기도 합니다. 2009년 영국 전역에 "THERE'S PROBABLY NO GOD. NOW STOP WORRYING AND ENJOY YOUR LIFE"("신은 아마 없을 겁니다. 이제 걱정은 그만하고, 인생을 즐기세요")라는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써넣은 버스가 등장해 무신론 전파운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광고주 중 한 명이 도킨스였다는 것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에 영향을 받아 서울 시내버스에 "나는 자신의 창조물을 심판한다는 신을 상상할 수가 없다"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광고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도킨스는 자신을 과학자라기보다 저술가로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습니다. 그만큼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이 책 <확장된 표현형>은 <이기적 유전자>, <눈먼 시계공>과 함께 '도킨스 3부작'이라 불리며 그의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책입니다. 을유문화사가 이번에 내놓은 <확장된 표현형>은 '전면 개정판'인데, '옮긴이의 말'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당시 학계와 일반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당대 최고 진화생물학자들의 독창적 연구를 창의적으로 정리한 측면이 강했다(6). 그로부터 5년 만에 <확장된 표현형>을 내놓으며 "여기서 그는 <이기적 유전자>를 둘러싼 오해와 논쟁에 대해 답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책에서 못 다한 더 도발적인 주장까지 담아내고자 했다"(6).



'옮긴이'는 도킨스의 말을 빌어, 이 책이 "전문가들을 위해서 작정하고 쓴" 가장 도킨스다운 책이며, "따라서 그의 저서들 중에서 가장 전문적이기도 하다"고 평가합니다(7).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가장 도킨스다운 책이라는 이 책이 <이기적 유전자>나 <눈먼 시계공> 같은 책들이 비해 (다소) '덜'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확장된 표현형>은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 혹은 운반자일 뿐"이라는 주장에서 나아가 "유전자가 다른 개체들마저 자신의 운반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입니다. "유전자가 발하는 '표현형 효과'는 자신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지렛대와 같은 도구이며, 이러한 도구는 유전자가 자리한 몸 밖으로, 심지어 다른 개체의 신경계 싶숙이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그는 '사례'(조개삿갓, 비버 등)를 중심으로 논지를 펼쳐가는데, 난해하다고 해야 할까, 낯설다고 해야 할까, 진화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저에게는 이해하기 '고약한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쉽게 읽어낼 수 없었던 것은 아마도 저의 비천한 지식 탓이겠지요.)


집중하기 어려웠으나 '그럼에도' 이해하기 위해 '보다 노력하지 못했던 이유'는, '서문'에서부터 김이 빠져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강력하고 도발적인 추력이 그의 장기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변명'이라고 말하는 '서문'을 읽어보면, 그는 미리부터 피할 길을 만드는 듯한 인상을 짙게 남깁니다. "이 책은 교과서도, 확립된 분야를 안내하는 입문서도 아니다. 이 책은 생명의 진화와 특히 자연 선택에 기반을 둔 논리, 자연 선택이 작용하는 생명의 위계 수준을 나름대로 조망한다"(11). 또 "내가 옹호하려는 주장은 사실에 기초한 입장이 아니라 사실을 보는 어떤 방법이므로 독자는 통상적인 의미의 '증거'를 기대하지 말기를 경고해둔다"(13)고도 합니다. 나아가, "내가 옹호하려는 생명관, 이름하여 확장된 표현형이 정통적인 관점보다 실제로 더 옳은 것은 아니다. 다만 확장된 표현형은 다른 관점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더욱 심원한 통찰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주장을 입증할 실험이 가능할지는 확실치 않다"(24)고 미리 밝힙니다. 


"여기서 옹호하려는 방식은 새로운 이론도, 검증하거나 반증 가능한 가설도, 새로운 예측을 내놓아 이로써 판단 가능한 어떤 모형도 아니"며, "어떤 사실 명제의 진리를 이해시켜려" 하는 것도 아니"(23)라면, 그럼 무엇이란 말일까요? 그의 표현대로라면, 이 책에 담긴 그의 주장은 생물학적 사실을 "보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마치 실록 속 단 한 줄의 인물을 <대장금>이라는 드마라로 탄생시킨 '작가'처럼, 자연에서 관찰되는 '사실'을 '그럴 듯한' 논리로 재구성한 상상의 세계라고 할까요. 결국, 도킨슨이 설명한 "사고 세계 기법", 즉 "현실 세계를 더 잘 이해하려고 상상의 세계에서 노니는 일"(26)인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한 과학자의 굉징히 수준 높은 나름대로의 지적 '유희', 그러니까 과학 '놀이'에 가까운 책으로 보입니다. 책의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하지도 못한 독자로서 이런 평가를 하는 것이 굉장히 용감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자도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이라고 솔직히 밝히고 있습니다. 옮긴이는 <도킨스를 더 깊이 이해하려는 분들, 현대 진화생물학의 인문적 함의를 찾아보고자 하는 분들, 그리고 <이기적 유전자>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에 도전해보라고 권하는데, 저는 진화생물학이나 <이기적 유전자>의 주장을 따로 더 공부를 하고 와서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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