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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철학자들! - 웃기고 괴팍하고 멋진 철학자의 맨얼굴 ㅣ 사고뭉치 13
헬메 하이네 지음, 이수영 옮김 / 탐 / 2016년 6월
평점 :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감히 알려고 하라!
저자의 이력이 독특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화가"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 작가이자 화가가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고대-중세-근대에 이르기까지 총 39인의 철학자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한 장의 상징적인 그림으로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압축하여 보여주고, 동화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각각의 철학자가 철학적 과제로 삼았던 명제는 무엇인지를 콕콕 짚어줍니다. "철학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쉬워야 한다는 그의 확신에 따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 책을 썼다"(앞표지 날개 中에서)고 하는데, 저자의 바람처럼 딱딱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자와 한층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오, 철학자들!>은 철학에 관한 큰 그림을 그려주는 책입니다. 철학은 무엇인가부터, 철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생을 마감했으며, 무엇을 탐구했고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를 한 눈에 꿸 수 있게 해줍니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먼저 "철학이 뭘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런 대답을 내놓습니다. "철학은 자연과학과 신학 사이에 있는 학문이야. 과학자들은 알기를 원하고, 신학자들은 믿기를 원하고, 철학자들은 안다고 믿어. … 철학자들은 시대정신을 비판하지. 철학을 한다는 건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진다는 거야"(13). 철학적 사고의 탄생 과정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인류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도 있을 거야. 사춘기의 모든 청소년처럼 인류도 자신의 몸에 눈을 떴고, 3차원 공간을 발견했어. 인류는 자기 자신을 벌거벗은 상태로 자유롭게 묘사했고, 물체들에 관한 이론인 기하학을 창안하고 이해했어. 오랜 잠에서 깨어난 인류는 놀라움에 세상을 둘러보기 시작했어.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찾으려 했고, 그로써 철학적인 사고가 탄생했어"(19). 심플하지만 뼈 있는 설명입니다. 또 "철학자들은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는데, 그 이유가 재밌습니다. "고대 철학자들은 미소년을 사랑했고, 중세에는 교회를, 근대에는 자신의 자아를 사랑했거든"(15).
목사 집안에서 태어난 철학자들이 많았다는 것, 흄은 요리 솜씨가 뛰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다는 것, 루소는 자신이 쓴 책, <에밀>과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 야스퍼스는 타고난 성향 탓에 평생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생 아내만을 사랑하면서 살았다는 것, 철학자라고 맨날 사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을 더 중요시한 철학자들도 있었다는 것, 어떤 철학자는 병적인 정도로 특히 특히 성격이 괴팍했다는 것 등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가득합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게 읽은 책입니다. 그림도 있고, 글자도 크고, 에피소드 중심이라 청소년 교양도서 느낌인데, 읽어도 해석이 안 되는 철학책을 지루하게 물고 늘어졌을 때마다 훨씬 건져올린 것이 많다는 느낌을 주는 책입니다. 무거운(!) 철학책에서는 읽을 수 없었던 철학자들의 사생활은 철학자와 그 사상을 이해하는 데 다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사페레 아우데(감히 알려고 하라)!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인용한 말이라고 합니다(144). 시대를 뒤덮고 있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절망할 때마다, 철학에서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기대를 품어봅니다. 생각하는 힘, 정신의 힘말입니다. 철학에 관심은 많으나 친해지기 어려웠던 독자들, 철학사의 맥을 잡고 싶은 학생들, 재미있는 교양서적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