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 회복하는 인간 Convalescence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24
한강 지음, 전승희 옮김, K. E. 더핀 감수 / 도서출판 아시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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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화상을 입자마자 바로 처치를 안 한 거죠?"(8)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은 발목에 화상을 입은 여자가 그 상처를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닷새 전, 여자는 언니의 장례를 치르고 산을 내려오다 발목을 삐었고, 한의원에서 뜸 치료를 받다 화상을 입었고, 화상을 입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병원을 찾았다.


이 짧은 이야기는 묘한 병행과 대조로 가득 차 있다. 결점투성이 여자와 그런 여자를 질투한 언니, 온 힘을 다해 언니를 사랑한 여자와 그런 동생을 사랑하지 않는 언니, "이 세상의 모든 화려한 행복이 매순간 당신을 따돌리고 있는지 모른다는 느낌"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와 이 세상의 모든 화려한 행복의 조건 속에서 죽어버린 언니, 화상 입은 발목 위로 겹쳐지는 쓰라린 기억. 묘한 병행과 대조 속에서 조직이 훤히 보일 정도로 심한 화상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방치된 발목처럼 방치되었던 관계. 시간이 지나자 살아나는 피부 조직과 죽어버림으로써 끝내 화해를 이루지 못한 관계. 그리하여 회복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회복하는 인간>.




"그 해가 지나가기 전에, 당신은 늦은 밤 그녀의 방에서 물었다. 

난 정말 모르겠어, 사람들이 어떻게 통념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삶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그렇게 생각하니, 

하지만 그럴 수 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통념 뒤에 숨을 수 있어서"(34)


'맨부커상 국제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한강을 읽는 중이다. 한강과의 만남은 이 책이 처음이라 나는 아직 그녀를 알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해설을 기대어보면, "한강의 소설에는 언제나 아픔을 간직한 사람들이 그려진"단다. "이때 그들로부터 강조되는 것은 아픔의 원인이나 그것의 치유 과정이 아니라 오로지 아픔이라는 상황 그 자체이다. 한강의 인물들은 특별한 불행을 경험했다는 이유로 고통의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삶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채 삶이 고통 그 자체라는 듯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그 삶을 지탱하는 무수한 통념들, 더 나아가 인간이라는 조건 자체가 견딜 수 없는 폭력이라는 듯 한강의 인물들은 생생한 고통의 감각들을 호소하며 섬세한 강인함으로 이 삶을 가로지르고 있다"(68).


이런 해설을 읽으니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와 언니의 대화가 의미심장해진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무수한 통념들 중 한강이 견딜 수 없는 통념은 무엇일까? 그녀가 악물고 새벽까지 뒤척인 끈덕지고 뜨거운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방치되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문다는 통념? 재밌는 건 통념 속에서만 살아가는 삶을 견딜 수 없어 했던 여자는 계속 살아가고, 통념 뒤에 숨으려 했던 언니는 가장 나약한 모습으로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몇 개의 흉터가 당신의 몸에 남아 있다"(56).


타이완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중화권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룽잉타이'는 그녀의 책 <눈으로 하는 작별>에서 '형제'라는 미묘한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좋은 친구처럼 정성껏 안부를 물은 적도, 연인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며 챙긴 적도, 부부처럼 한배를 타고 인생을 헤쳐나간 적도 없었다. 형제란, 각자 자신의 일과 삶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혼자 결정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관계 속의 사람들이다. 우리가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대부분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위해서이다. 그럴 때면 무릎이 맞부딪칠 정도로 가까이 앉지만, 그렇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없다. ... 가끔 우리는 묻는다. 엄마조차 떠나고 없어도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 모이게 될까? 우리는 혹시, 바람처럼 각자 막연한 길을 떠돌다가 인생의 사막에서 서로를 잊게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또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완전한 타인이 아닌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어린시절을 똑똑히 기억한다. ... 자라면서 겪은 부끄러움, 좌절, 성공 그리고 행복까지. 인생을 갓 시작한 그 시절에 대해, 온 세상에서 우리만이 알고 있다"(60-61).


<회복하는 인간>에서 한강은 '자매'라는 미묘한 관계를 이렇게 긴 설명이 아닌, 감각으로 일깨운다. 아름다운 울림이 아닌 처절한 통각으로. 처절한데 지독하지 않고 일면 담백하게 느껴지는 것이 작가 한강처럼 참 묘한 분위기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책 한 권 읽고 한강의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할 만큼 용감하지 않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짧은 문장 안에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계속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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