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 철학노트 필사본 10년 후 나를 만드는 생각의 깊이 3
홍자성 지음, 김성중 옮김 / 홍익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버지의 서재를 채우다



아버지는 평생 7남매의 장남이라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사셨습니다. 동생들 공부와 결혼까지 책임져야 했기에 일찍 자수성가를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수성가 후, 아버지가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을 짓고 거실 한 쪽 벽면을 책장으로 만드신 일입니다. 그 집이 경매에 넘어가 살림을 거의 버리고 이사를 할 때도, 아버지는 책장에 있던 책들을 챙기셨습니다. 녹끈에 묶인 채, 다락방에서 뽀얗게 먼지가 쌓여갔던 세계문학전집, 동양고전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책들을 풀어보는 것이 사춘기 시절 저만의 놀이였으니까요.


환갑이 넘은 나이에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하신 아버지에게 다시 아버지만의 책장이 생겼습니다. 그 책장 한 켠은 동양고전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 빼곡한 책들 사이에 <채근담, 철학노트 필사본> 이 책 한 권을 더 채워드렸습니다. 아버지께 큰 딸이 드리는 선물로 말입니다.

 

아버지는 한자 신동이셨고, 어릴 때부터 동양고전을 즐겨 읽으셨답니다. 덕분에 우리 4남매는 동양고전을 인용한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들이 아버지 삶의 자양분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채근담>은 자주 <탈무드>에 비유됩니다. "서양에 <탈무드>가 있다면 동양에는 <채근담>이 있다"고 합니다. "정신수양서이자 처세지침서"로 읽혀온 동양고전입니다. <채근담 철학노트 필사본>은 "<채근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준 최고 명언들을 가려 뽑아 친절한 주석을 덧붙인 뒤에, 독자가 그 문장을 통해 자기성찰을 할 수 있게 철학노트 페이지를 따로 편집해 놓"은 책입니다. 빈 여백(철학노트)에 필사를 해도 좋고, "자기성찰의 결과를 적으며 미래를 설계"해도 좋다고 일러줍니다. 


아버지의 필사를 보니 역시 우리 아버지는 이 딸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셨구나 싶습니다. 만일 저라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필사를 하기 위해 엄청나게 신중했을 텐데, 아버지는 한자 연습을 하듯 자유롭게 노트를 채워가고 계셨습니다. 이미 몇 권의 필사노트에 도전한 전력이 있는 저는 필사를 너무 신중하게 생각하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눈으로만 책을 읽는 것보다 손으로 옮겨적으며 읽는 것이 훨씬 더 깊이 있는 독서가 됩니다. 그러나 필사 자체를 목적으로 하면 무얼 옮겨 적고 있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베껴쓰기 바쁜 역효과가 나기도 합니다. <채근담>은 더욱 그러합니다. 필사에 목적을 두기보다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입니다. 


아버지가 이 책을 다 필사하실 때까지 아버지를 피해다닐 작정입니다. 이 책에 가려 뽑은 <채근담>은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 도에 이른다는 것, 참되게 산다는 것, 타인과 어울려 산다는 것, 세상을 헤쳐 나간다는 것, 군자의 도리에 따른다는 것'에 대해 교훈하는데, 아버지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며 저를 붙잡고 몇 시간씩 훈계를 하신답니다. <채근담>을 찬찬히 읽어보면 (아직까지 우리 세대에게는) 모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지당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당연하지만 이제 더 이상 당연하게 가르쳐지지 않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음미하듯 필사하며 마음에 새겨보아야 할 교훈으로 <채근담 철학노트 필사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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