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류시화 지음 / 무소의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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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프레임으로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싶은 마음에 아무도 몰래 혼자 흔들리던 날, 이 시집을 들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내게는 정답처럼 주어진 '성경'이라는 책이 있지만, 바로 서기 전에 더 세차게 흔들려보고, 길을 찾기 전에 완전히 길을 잃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한 후에야,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온전히 납득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읽었습니다. 시인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니까요. 시인의 프레임을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세상과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람과 차가 바삐 오가는 광장에 앉아 시를 읽을 때면, 혼자만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 덕분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길을 발견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나만의 비밀스러운 놀이처럼 말입니다. 

 








류시화 시인은 사춘기 열병을 앓던 시절에 우리가 좋아했던 시인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이 한 줄의 싯구가 그 시절 우리들의 마음을 얼마나 울렁이게 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시를 노래하는 시인(남자)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사는 사람일까 궁금하기도 했더랬지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류시화'라는 시인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그를 떠올리면 그저 '길 위에 선 시인', '구도자'와 같은 이미지들이 막연히 마음에 떠돌 뿐입니다. 


이문재 시인의 눈에 비친 이 시집은 이런 모습입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은 우선, 소금의 시집이다. 소금에 대한 이미지들이 시집 곳곳에서 번득인다. ... 그러면서 이번 시집은 단순함의 위력을 발휘한다. 그 단순함을 지탱하는 것이 '발견의 시학'인데, 그 발견은 주로 소금(물)과 나무(뭍), 그리고 별(하늘)과 풀(땅)으로 건져 올려진다"(88-89). 그리고 이런 해석도 내놓습니다. "이 발견 앞에서 인간과 세계는 아프다. 매우 낯익은 것들이 돌연, 낯설어진다"(86).


제 감정이었을까요, 시인의 감정이었을까요, 세상의 본질이었을까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통해 조용히 울고 있는 존재들과 만났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본 세상은 슬펐습니다. 우리가 발 딛고 세상에 슬픔은 치유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기대고 의지해야 할 친구로 존재합니다.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여행자를 위한 서시, 31)나, "얼마나 많은 날을 내 안에서 방황했던가"(질경이, 23)요. 그렇게 살다 우리는 길 모퉁이에 슬픔의 꽃등 하나 밝히고 조용히 사라지겠지요.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 등 하나가 / 꽃집에 걸려 있다"(꽃등, 26). 시인은 꼭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고 있는 우리를 깨워 이 슬픈 사랑을 기억하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정상적인 감정은 웃음이 아니라 슬픔이라고 말입니다. 







 

 




시를 노래하는 마음으로 살고자 했던 어린 시절의 바람을 떠올려봅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 때는, 많이 가졌을 때가 아니라 텅 비었을 때라는 걸 말입니다. 우리는 많이 가져야지만 누군가를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고, 채워줄 수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정반대라는 걸 깨닫습니다. 줄 수 있는 것이 나말고 아무것도 없을 때, 사랑말고 아무 욕심이 없을 때, 그렇게 텅 빈 가슴일 때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온갖 시들을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시집 한 권 손에 들고 읽어보면 어떠냐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종이책에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스크롤을 움직이며 읽는 시와, 책장을 넘기면 읽는 시의 맛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완전히 흔들려야 더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완전하게 길을 잃어야 전혀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본질을 들여다 보고자 하는 시인들의 노래는 어쭙잖은 지식과 어설픈 믿음으로 지어진 우리의 위태로운 궁전들을 흔들어버리는 힘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너질 집이라면 무러져내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확신이 아니라, 삶에 대한 확실한 의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사는 세상에 확실한 의문을 품고 싶은 날, 시를 읽으면 어떨까요? 류시화 시인처럼 구도자적인 성찰이 짙은 시인의 시들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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