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 - 어떻게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YES를 끌어낼까?
최찬훈 지음 / 유노북스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직진밖에 모르던 내가 우회로를 배우다!
무조건 직진! 대화할 때, 우회를 모르는 1인입니다. 오랜(?) 조직생활이 그렇게 만들었지요. 어차피 좋은 뜻으로 말을 해도, 진심을 다해도, 듣지 않을 사람은 듣지 않고, 오해할 사람은 오해한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무조건 직진'이라는 정공법입니다. 직진이라는 정공법을 쓴다고 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에너지는 절약해준다고 판단해왔습니다. 그런데 <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은 저의 이런 믿음을 여지 없이 박살내버렸습니다. 대화에서 직진밖에 모르는 것은 서툰 운전자만큼이나 서툰 대화자라는 반성이 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잘라 말합니다. ""내가 좋은 뜻으로 했다", "나는 진심을 다했다"는 가치가 없는 말입니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았다"는 결과가 중요합니다"(226)라고 말입니다.
이 책에서 배운 벼락같은 가르침은 "인간은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4)는 것입니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특별히 싫어서가, 누가 특별히 무얼 잘못해서가 아니라, 타인의 말을 접할 때 당연한 일처럼 "우리 마음에 장벽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왜 타인의 말에 반발심이 들까요? 이 마음의 장벽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이것이 한마디로 '자기부정에 대한 회피'라고 정리합니다.
타인을 향해 세워지는 마음의 벽, 그 실체는 '자기부정에 대한 회피'입니다. 인간이 가장 싫어하고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자기부정입니다.
내가 A라는 행동을 한다.
→ 그 행동이 '틀렸다', '비효율적이다', '잘못되었다고'고 지적당한다.
이것이 자기부정입니다. 인간은 눈앞에서 엄청난 실리는 놓쳐도 자기부정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끝내 옳다고 고집을 부리다가 손해를 떠안는 존재입니다(124).
<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은 이와 같이 "상대방의 마음에 견고하게 서 있는 벽을 해체하여 내 말을 듣게 만드는 대화법"(5)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마음은 절대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없"(6)다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벽과 달리 심리적인 마음의 벽은 절대 부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힘으로 찍어 누리고, 때려 부수려하면 할수록 오히려 저항성만 더 단단해질 뿐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대화에 앞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한 기본 전제는, 인간의 마음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인간은 타인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이 마음의 벽은 절대 힘으로 부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공적인 대화, 지혜로운 대화는 "저 사람은 왜 내 말을 듣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가 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처럼 듣지 않으려는 사람을 "타인의 마음에 저항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내 말을 듣게 만드는 것"이 바로 "우회 대화법"이라고 정의합니다(11).
이 책에서 우리가 배우는 우회 대화법은 최면술의 대가로 알려진 '밀턴 에릭슨'의 가르침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밀턴 에릭슨은 "잠재의식을 다루면서도 일반일을 상대로 쉬운 언어를 통해 대화 심리 치료를 한 인물입니다"(26). 그런데 에릭슨이 직접 저술한 저서는 거의 없고, "그와 관련된 저서는 대부분 추종자들이 에릭슨의 치료 사례를 모으고 자기 의견을 덧붙인 것"(11)이라고 합니다. 말을 통해 사람을 바꾸는 기법으로 알려진 NLP(엔엘퍼)도 그중 한 줄기입니다. (참고적으로, 둘 다 에릭슨의 가르침으로부터 파생되었지만 저자는 엔엘퍼들의 이론이 에릭슨을 오해한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저자는 에릭슨이 진짜 전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계속 강조하는데, 그 핵심은 대화 상대를 일반화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에릭슨은 어떤 이론을 공부했어도, 어떤 성공 사례를 경험했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부터 새롭게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 철저히 내 눈앞의 사람에게 걸맞는 개별적 대화법을 시도할 것! 언제나 카멜레온이 될 것! 이것이 바로 에릭슨이 견지한 대화법의 기초입니다"(30-33). 에릭슨은 환자를 치료할 때, 한 가지 신념을 가지고 접근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사람은 특별하다"는 것이었습니다(54). 저자가 이 책에서 힘주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화 공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비결은 모든 고정관념을 버리고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려 그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입니다. 내 말을 들어 달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살펴 "상대가 들을 기분이나 상태가 되도록 유도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12). 저자는 <우회 대화법 스킬 편>을 통해, 어떻게 하면 저항감을 줄이고 내 말을 듣도록 유도할 수 있는지 '우회로'를 만드는 구체적인 스킬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어떤 우회 대화법 스킬은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설명입니다. "그냥 우회하려고 하면 상대가 우회로를 마크하고 나올 겁니다. 그걸 못 하도록 내 진심과 다른 행동을 해서 상대를 착각하게 만들고, 빈틈으로 파고듭니다"(138). 저자는 이것이 페이크 기술이라고 하는데, 에릭슨처럼 치료를 목적으로 할 때라면 모를까, 대화를 하면 속임수를 쓰는 것 같이 좀 찜찜한 마음도 듭니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이 열리도록 하는 방법이지만, 거칠게 표현하면 진심을 감추고 비위를 맞춰 상대를 속이라는 말처럼 들려 살짝 거부감이 생기는 스킬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의 장벽'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게 해준다는 것과, 대화에 앞서 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화의 목적은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대화를 협상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내 뜻이나 내 말이 아니라 먼저 상대의 마음에 집중하게 해주는 <밀턴 에릭슨의 우회 대화법>이야말로 '자기 주장'을 미덕으로 삼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말로만 상대를 상대하려는 서툰 대화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머릿속에서 '나에 대한 모든 문제'를 털어 버리고, 상대방의 고유한 특징을 발견하는 데 관찰력을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호감을 끌어내는 방법입니다"(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