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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할 것인가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외과 의사는 마음 한구석에 공동묘지를 지니고 살게 된다"(16).
호상(好喪)이라는 말을 장례식장에서 처음 배웠습니다. 무병장수하신 어르신들의 죽음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라는 작품을 보면, 세상에 호상이란 없다는 대사가 등장합니다. 장례식장에서 호상(好喪)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주인공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지요. "호상, 호상, 함부로 말하지 말란 말야. 미친 것들아..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잘 죽은 거란 말이냐!!! 세상에 잘 죽는게 어딨냐 말야!!!" 할아버지의 시선에서 보면, 우리가 호상(好喪)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젊은이들의 시선, 자녀들의 위안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며 잠시 생각해봅니다. 세상에 참 괜찮은 죽음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참 괜찮은 죽음의 조건은 무엇일까? 영국의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가 이 질문에 답을 했습니다. 매일 인간의 뇌를 들여다보는 신경외과 의사의 시선에서 참 괜찮은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사실 이 책은 제목처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책은 아닙니다. '참 괜찮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 꼭지에 불과하고, 전체적인 내용은 '신경외과 의사의 24시'에 더 가깝습니다. 신경외과는 "뇌와 척추에 질병이나 손상이 있는 환자를 수술로 치료하는 곳"인데, 이 책은 그런 수술이 어떻게 결정되고, 진행되는지, 그 과정에서 의사와 환자가 겪는 고통과 딜레마는 무엇인지를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먼저 독자의 마음에 강렬하게 와닿는 것은 신경외과 의술의 한계와 의료계의 현실입니다. 동맥류 수술은 폭탄을 제거하는 것과 같은데, 실제 폭탄 제거와 다른 점은 제거자가 아니라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것이고, 뇌 수술은 과학과 예술이라기보다 배우는 데 여러 해가 걸리는 '실용적인 재주'일 뿐이며,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은 '운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저명한 외과의사도 때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의대생일 때 가졌던 단순한 이타심은 금세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에 환자들에게 동정을 쉽게 느꼈던 이유는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이 없어서였다. 환자에 대한 책임과 함께 실패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면, 의사에게 있어 환자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다"(119).
환자나 환자의 가족 입장에 처하게 되면 우리는 환자에게 닥친 불행 앞에 의사는 무조건 최선과 친절과 양심으로 무장하여야 하며, 최선이 통하지 않으면 기적이라고 일구어내기를 기대합니다. 환자를 그저 돈으로 대하는 의사,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책임이 없다고 하는 의사, 환자와 환자 가족을 무시하는 의사를 향한 지독한 경멸과 비난은, 내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다는 절박함과, 그 의사의 의술과 지식이 아니면 다른 희망은 없다는 절망감의 폭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보다 의지해야 할 사람이기에 작은 실수 하나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은 늘 환자의 입장에 서 있던 독자를, 때에 따라 환자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고 악당이나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의사의 입장에 서보도록 인도합니다. 많은 경우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뇌 수술의 불안과, 그런 불안이 일상이 되는 삶과,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놓은 무시무시한 실패와, 그런 환자를 대면해야 하는 고통과,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낸 뒤에 곧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마는 외과 의사의 어렵고도 힘겨운 일상을 따라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는 의사의 이런 불안은 목격하며 더 깊은 불안에 휩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자의 두개골을 열어 "수많은 혈관으로 덮인 기름진 단백질 덩어리(뇌)"에 달라붙은 종양을 들여다보는 의사는, 평화롭게 죽도록 내버려두는 편이 더 나을 환자를 만나기도 하고, 언젠가는 자신도 환자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기도 하고, 자신의 죽음을 예상해보기도 합니다. 의사의 시선에서 저자는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소망하기도 합니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으로 기왕이면 자는 동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복은 그리 쉽게 오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275).
그에게 참 괜찮은 죽음을 가르쳐준 것은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치료를 의도적으로 중단하고, "여기가 내가 죽게 될 곳이라고 어머니가 결정한 대로 아버지와 40년 간 함께 지내온 침실"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러 번 어머니께 작별인사를 건네기도 했던 아들은 어머니의 삶을 회상하고 어머니의 추억에 건배하며, 참 괜찮은 죽음의 조건을 생각합니다.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 했어"(275).
이 책이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외과의사로서의 일상을 숨김 없이 드러낸 솔직함 속에 "그냥 잘한 것은 가장 잘한 것의 적이라고 으르렁대면서"(50) 완벽함을 지향하는 열정과, "사람이 행복해지는 가장 믿을 만한 경로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53)이라는 저자의 진심이 그의 삶 곳곳에 배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열정과 진심이 모두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한 의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는 참 괜찮은 의사입니다. 참 괜찮은 죽음은 이렇게 괜찮은 삶을 일구어가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다시는 선생님을 뵙고 싶지 않아요."
"저도 그렇습니다."(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