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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물리학 - 기발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적 교양을 위한 물리학 입문서
렛 얼레인 지음, 정훈직 옮김, 이기진 감수 / 북라이프 / 2016년 4월
평점 :
"세상의 모든 일은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심지어 일어나지 않은 일조차도!"
- 션 캐럴, 이론물리학자
구 모양의 소 이야기를 아시나요? 사회과학에서는 매일 같은 시간에 먹이를 먹는 거위가 유명합니다. 이처럼 물리학계에서는 구 모양의 소 이야기가 꽤 유명한 농담인 듯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소와 여러 동물들이 있는 목장이 있었다. 목장 주인은 우유 생산량을 늘리고 싶어서 엔지니어, 심리학자, 물리학자에게 컨설팅을 요청했다. 일주일 후 엔지니어가 보고서를 들고 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우유 생산량을 늘리려면 더 큰 우유 펌프와 관을 구해서 우유를 끝까지 뽑아내야 합니다."
다음은 심리학자가 와서 말했다.
"소가 우유를 더 많이 생산하게 해야 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소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죠. 소는 우유를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외양간을 녹색으로 칠하세요. 그러면 소들은 풀과 행복한 들판을 떠올리면서 행복해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물리학자가 와서 설명했다.
"소가 구 형태라고 가정하시고……."(70-71)
이 농담을 듣고 빵 터졌다면 물리학의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말일 겁니다. 반대로 이게 왜 재미있는 농담인지 모르겠다면 물리학의 세계를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겠지요. 이 농담을 듣고 빵 터질 정도로 물리학의 세계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괴짜 물리학>을 누구보다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의 감수를 맡은 서강대 물리학과 이기진 교수님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유쾌하고 재미있게 물리의 세계로 이끈다"고 평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구 모양의 소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라면, 이상한 나라로 빨려 들어간 폴처럼 낯선 물리학의 세계가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다고 미리 경고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레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구 모양의 소 이야기'가 왜 재밌는 농담인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물리학 지식이 저절로 생길 테니까요.
<괴짜 물리학>은 '생각의 틀을 깨는' 다소 엉뚱한 질문들을 기발한 물리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책입니다. 50가지 질문을 담은 목차만 봐도 읽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책입니다. "헐크가 점프하면 도로가 부서질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얼마나 무거울까?", "슈퍼맨은 사람을 우주로 날려버릴 수 있을까?", "우주선도 잠수함처럼 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주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살찌지 않을까?" 아주 재밌는 질문이지요? 그런데 이 다소 엉뚱한 답변을 물리학적 지식으로 기가 막히게 풀어냅니다. 이런 질문을 생각해냈다는 것도 놀라운데, 영화의 한 장면만 보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계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습니다. 이보다 더 기사천외한 질문들도 많습니다. "자판을 두드려서 휴대폰을 충전할 수 있을까?", "지진이 빠를까? 트윗이 빠를까?", "비행기에서 땅콩 한 봉지를 빼면 얼마나 절약될까?", "칠면조 고기를 낙하시켜 익힐 수 있을까?", "거대 오리가 강할까? 작은 말이 강할까?", "자동차로 좀비를 얼마나 물리칠 수 있을까?" 질문도 기상천외하지만, 답변이 더 기상천외합니다!
그렇다고 엉뚱한 질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에도 중력이 존재할까?", "자동차끼리 충돌하는 것보다 벽에 충돌하는 게 더 위험하다?", "인구가 많아지면 지구가 달을 끌어당길까?", "물 위로 올라올 때 숨을 멈추면 왜 위험할까?"와 같이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흥미로운 물리학적 지식도 배울 수 있습니다.
<괴짜 물리학>을 읽으며 물리학이 놀라운 상상력의 세계(소를 구 형태라고 가정하는)라는 것, 그리고 물리가 힘의 세계라는 것을 처음으로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리를 잘 하려면 수학적 상상력(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함께 말입니다. 사실 저에게 '물리'는 일찌감치 포기했던 과목 중 하나입니다. 과학 과목 중에서도 제일 지루했던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괴짜 물리학>처럼 물리학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공부에서는 물리를 포기했지만, 학교를 졸업한 뒤에 오히려 물리학적 지식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리는 우리 세계 너머 저 우주처럼 아득하게 먼 세계의 학문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괴짜 물리학>은 물리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학문인지를 새롭게 인식시켜 주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물리학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고 "물리학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는" 과목인지를 먼저 깨달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괴짜 물리학>은 우리가 품을 수 있는 흥미로운 질문들 중에 물리학이 답해줄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인지를 흥미롭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품은 의문에 답하기 위해, 물리는 어떤 과정과 논리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가지지도 도식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리학적 지식이 있는 독자는 그 과정에서 '이해'가 주는 '달콤함'에 푹 젖어들 것이고, 물리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는 '새롭게 알아가는 신선한 재미'에 푹 빠져들 수 있는 책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물리적으로 답변을 도출하는 계산의 과정이 어질어질할 만큼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질문에 대한 기상천외한 '답'이 주는 짜릿함이 좋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었습니다. 단순히, 질문과 답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