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준열의 시대 - 박인환 全시집
박인환 지음, 민윤기 엮음, 이충재 해설 / 스타북스 / 2016년 3월
평점 :
품절


 

옛날의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불행하였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즐거운 말이 없었고

당신들은 살아 있었을 때

사랑해 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해방이 되고

하늘에 자유의 깃발이 퍼덕거릴 때

당신들은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몸을 좀 먹혀

진실한 이야기도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


오늘은 4.19혁명기념일입니다. 박인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읊조려지는 날입니다. "당신들은 / 오랜 고난과 압박의 병균에 / 몸을 좀 먹혀 / 진실한 이야기도 / 사랑의 노래도 잊어버리고 / 옛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114). 어제는 버스를 타고 안산 거리를 달렸습니다. 안산 시청 앞에 노오란 플랜카드가 봄꽃처럼 물결치고 있었습니다. 성경말씀 한 구절이 생각나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세기 4:10). 무고한 피의 호소 앞에 누군가는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라는 약속으로 답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시대의 참상을 외면하지 않고 시로써 응답한 시인이 있습니다. 박인환이라는 이름은 낯설어도, 이 노랫말은 귀에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 내 가슴에 있네"(세월이 가면 中에서). 아니면, 이런 시를 읽어보았을지도요. "한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와 숙녀 中에서). 

"세월이 가면", 그리고 "목마와 숙녀"를 생각하면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시인이었을 법도 한데, 왜 이 두 시 이외에는 잘 알려진 작품이 없는 것일까요? 만 30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문단 권력의 횡포가 가장 큰 이유였나 봅니다. 해설은 맡은 이충재 시인은 박인환이 "사실상 주류 문단의 희생양"(235)이었음을 고발합니다. "이제까지 박인환의 시는 과소평가되었다. 박인환과 동시대 모더니즘을 지향하며 동인 활동을 한 김수영 시인조차 박인환을 일컬어 "서구적인 것에 경도된 경박하며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몰아붙이면서 경멸과 함께 강도 높게 폄하했다"(234). 문학 권력은 "김수영, 김춘수, 신동엽이란 스타 시인들만을 대중에 알리는 데 주력"했고, "연구자들의 편견에 대항할 문학 연구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237)이 박인환을 오래 오해하게 된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박인환의 시가 재평가되기를 바라는 문인들은 그가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려고 했고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시인"(28)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일제강점기, 6.25 전쟁과 같은 역사의 휘오리는 지나갔지만, 한 권의 시집이 남아 그 시대를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어린 딸이여 /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디 있는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 살아 있을 것인가"(어린 딸에게 中에서, 71 / "있는냐"는 책의 오탈자인지, 시적허용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비껴갈 수 없는 자신의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거북이 처럼 괴로운 세월이 / 바다에서 올라온다"(남풍 中에서, 40). 그리고 온 몸과 영혼으로 괴로워했지요. "정의의 전쟁은 나로 하여금 잠을 깨운다. / 오래도록 나는 망각의 피안에서 술을 마셨다. / 하루하루가 나에게 있어서는 / 비참한 축제이었다"(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86).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아무것도 욕망할 수 없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고통일지 가만히 짐작해봅니다. "나는 아무 욕망도 갖지 않겠다. / 더욱이 낭만과 정서는 / 저기 부서지는 거품 속에 있어라"(태평양에서 中에서, 148). 그리고 역사의 거울을 통해 오늘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역사의 자리를 돌아보지요. "옛날이 아니라 그저 절실한 어제의 이야기 / 침략자는 아직도 살아 있고 / 싸우런 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 무거운 공포의 시대는 우리를 지배한다. / 아 복종과 다름이 없는 지금의 시간 / 의의를 잃은 싸움의 보람 / 나의 분노와 남아 있는 인간의 설움은 / 하늘을 찌른다. // 폐허와 배고픈 거리에는 / 지나간 싸움을 비웃듯이 비가 내리고 / 우리들은 울고 있다 / 어찌하여? / 소기의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 원수들은 아직도 살아 있지 않는가"(새로운 결의를 위하여 中에서, 200). 

 


잊지 않겠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이며, 기억한다는 것은 행동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우리는 왜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가, 왜 시대의 진실을 알아야 하는가, 왜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행동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잊기를 바라는 사람들, 망각 속으로 진실을 던져버리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욕심 때문에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 꿈을 빼앗고, 사랑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는 우리의 원수가 아니겠습니까? <검은 준열의 시대>는 우리가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야 할 것은 떡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도, 배가 고파도, 살아나가자고, 떨어진 신발, 무릎이 보이는 옷을 걸치더라도 열심히 배우자고,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나 남보다 더욱 진실히 살아나갈 것을 약속하자는 시인의 외침 앞에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 누군가의 무고한 피, 그리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은혜,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싸움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약속


먹을 것이 없어도 

배고 고파도 

우리는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떨어진 신발

무릎이 보이는 옷을 걸치고 

우리는 열심히 배울 것을 약속합시다.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못하나

푸른 하늘과 내

마음은 영원한 것

오직 약속에서 오는

즐거움을 기다리면서 

남보다 더욱 진실히 

살아 나갈 것을 약속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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