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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글쓰기 - 마음을 움직이는 글 어떻게 쓰나
김갑수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16년 3월
평점 :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글로 자기 자신은 물론 공동체의 삶에 기여하는 글쓰기, 이래서 진보적 글쓰기라고 명명한 것이다"(6).
이 책을 읽고나니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이 책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더 두렵다. 잘못 썼다가는 <진보적 글쓰기>를 배운(읽은) 사람이 글을 이렇게밖에 못 쓰나 책잡힐 것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이어트 '방법'을 알았다고 누구나 살을 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책 한 권을 읽었다고 당장 좋은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미리 해두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배움에도 이론과 실제(실전)가 있다면, 이 책은 이론과 실제를 동시에 가르쳐주는 책이라고 본다. 직접 글을 쓰고 첨삭지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여러 면에서 글을 쓸 때 많이 저지르는 실수를 짚어주기 때문에 굉장히 실제적으로 느껴진다. 이 책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강렬했던 가르침은 첫째, 좋은 글을 쓰려고 하기보다는 나쁜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 둘째, 글을 쓰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내 말이 있어야 한다는 것, 셋째, 글을 쓰기에 앞서 내가 쓰려는 글의 장르와 성격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공부는 철저히 네거티브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원칙이다. "다시 말해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나쁜 글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10). 화려한 수사나 기교를 고민하기 전에, 먼저 기본이 지켜지는 글을 쓰라는 쓴소리이다. 주제의 명료성, 표현의 정확성, 생각의 깊이가 있는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하되, 먼저 표현의 정확성, 다시 말해 "바른 문장, 적절한 어휘,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같은 글쓰기의 기본을 먼저 익히라는 당부이기도 하다. 이 원칙은 가장 중요하다는 첫 문장을 쓸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데, 저자는 나쁜 첫 문장의 예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준다. "일단 우리는 이런 첫 문장들과 반대되는 나쁜 첫 문장을 안 쓰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라든지, '사람은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식의 매가리 없는 첫 문장을, 그것도 자기만 아는 것처럼 쓰면 치명적이다"(51). 진짜 뜨끔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역사를 좋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하는 것이 진보"(8)라고 정의하는 저자는 "최상으로 가치 있는 글이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글'이"(43)라고 말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어떤 비유를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취미로 쓰는 글이라고 해도 내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내심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고 말이다.
이 책은 '일반적인 글쓰기', '논리적인 글쓰기', '서사적인 글쓰기'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한다. 지금까지 읽어본 글쓰기 관련 책 가운데 이렇게 장르별로 강의해주는 책은 처음이다. 생각해보면, 글은 목적에 따라 장르가 다르고, 장르에 따라 접근이나 풀어가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모든 글을 하나로 퉁쳐서 배운 셈이다. 내가 지금 쓰려는 글이 세 가지 카테고리 중 어디에 속하는 글인지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도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쁜 글을 쓸 위험을 확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런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가 새삼 정신이 번쩍 난다.
<진보적 글쓰기>는 "당신도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기보다, 오히려 "지금 글을 잘못 쓰고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준다(적어도 나에게는). 저자의 강의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당연한 말이지만 저자가 글을 참 잘 쓰는 사람이라 책이 참 재미있게 읽힌다. 나쁜 글과 좋은 글의 풍부한 예를 비교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한 책이기도 하다. 한 번 읽고 덮어놓는 책이 아니라, 글을 쓸 때마다 계속 옆에 두고 수시로 참조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