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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왜 새로운 결혼과 도덕이 필요한가?
이 책은 1929년도에 출간되었습니다. <결혼과 도덕>을 주제로 새로운 성윤리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고 과격한(?) 담론으로 받아들여졌을 듯합니다. 저자는 어머니의 시대(모계사회)부터 아버지의 탄생(가부장제), 금욕주의의 대두, 기독교의 성윤리가 결혼생활에 끼친 영향, 기사도적인 사랑으로 탄생한 낭만적 사랑이 프랑스 혁명 이후 결혼의 조건으로 대두되기까지 결혼(성)의 역사를 훑으며, 새로운 도덕의 필요성 문제를 꺼내듭니다. "성윤리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을 필요로 한다"(85).
저자는 크게 두 가지 요인 때문에 "성윤리가 과도적 상황"에 놓였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피임법의 발명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해방입니다(74). "과거에 여성들이 정절을 동기는 대개 지옥불에 대한 두려움과 임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지옥에 대한 두려움은 정통 신학이 쇠퇴하면서 사라졌고,임신에 대한 두려움은 피임법 덕분에 사라졌다"(78). (저자의 통찰에 따르면,) 부계 혈통에 대한 인식으로 혈통의 변조에 두려움을 갖게된 남성들은 여성의 정절을 보증하기 위해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여성의 노예화)으로 가부장제를 견고히 해왔고, 종교와 인습 도덕은 성과 죄(죄책감)를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이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과 전쟁, 그리고 과학의 개입이 여성의 사회적 해방을 가져오면서 '결혼'은 낡은 도덕과 새로운 도덕이 충돌하는 격전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저자는 엄격한 도덕률이 결혼에 해를 입히고, 사랑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을 금기시하고 정조를 강요하는 풍조가 강박관념과 성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성매매를 조장하며, 부부가 진정한 동반 관계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성윤리는 "자식과 관련되지 않은 사랑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식의 출산 문제와 관련한 도덕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신중한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237)입니다. 다시 말해, 출산, 그러니까 "자식(출산)과 관련되지 않은 일체의 성관계는 순전히 사적인 일"이므로 (결혼이라는 전제 없이) 젊은 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성적 자유의 확대가 성매매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기도 합니다(260). 그러나 이러한 사랑의 자유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 새로운 의무 관계로 진입합니다.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식에 대한 사랑과 의무를 느끼는 남편과 아내는 더 이상은 부부 간의 감정을 최고 우위에 둘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73). 여기에서 저자는 교육의 중요성, 국제정부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합니다.
비판적 독서를 한다면, 먼저는 이 책이 저술된 1929년과 현재의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권 역할의 축소와 국가 개입의 증대, 경제적 상황의 변화, 교육환경의 변화, 간통제 폐지와 같은 법률의 변화, 이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이런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사회 문제를 고찰해볼 때, 저자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는지도 평가될 수 있을 듯합니다.
(순전히 제 수준에 입각하여) <결혼과 도덕>은 비판적 읽기보다 사회적 통찰을 배우는 관점에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못하겠는데, 그렇다고 자신 있게 제 의견을 보태기도 주저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책 한 권을 읽고 저자의 의견에 토를 달기에는, 제 지식이 턱 없이 부족할 터입니다.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문필가이기도 하지만,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에 걸쳐 70여 권의 저서"(앞 표지 날개 中에서)를 남겼다고 하니 저자가 태산처럼 높아보입니다. 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가 결혼과 도덕(성윤리)이라는 것도 제게는 어렵습니다. 아직(!) 결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종교와 인습의 가르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쉽게 제 의견을 말하기가 망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며 프랑스 혁명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종교와 과학의 개입이 사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 낭만적 사랑과 완벽한 배우자에 대한 환상이 결혼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해볼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이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문필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지속시키고 결혼의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친밀하고 다정하며 현실적인 사랑이다"(72).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생을 두려워하고, 인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거의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다"(253).
(저자가 주장하는 성윤리가 이미 낡은 것이라 해도, 또 저자의 주장과 다른 견해를 갖는다 해도,) <결혼과 도덕>의 큰 역사적 줄기를 잡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