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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의 수학N - 수학의 발칙한 상상, 문학.영화.미술.철학을 유혹하다
박경미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2월
평점 :

우리는 진리를 알 수 있는가(Can we know the truth)?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성적'이 아니라
'학문'으로 바라보니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오는 분야가 있습니다. 바로 철학, 수학, 물리학입니다. 엄밀한 논리
속에 상상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으니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물론 관심과 실력은 별개라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지기만 하는
이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사랑)"입니다.
<박경미의
수학N>도 순전히 수학에 대한 존경심으로 읽었습니다. 수학 교양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님의 책이니 수학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컸지만, 역시나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어려운(!) 수식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는
것입니다. 수학의 대중화에 앞장 서고 계시는 박경미 교수님도 고민이 많았나 봅니다. "독자를
배려하다 보면 수학의 엄밀성이 낮아지고, 수학을 제대로 기술하다 보면 독자들이 멀어질 수 있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7)고 고충을
털어놓습니다. <박경미의 수학N>은 '수학'의 배우기 위해 읽어도 좋고, 저처럼 어려운 수식은 그림처럼 감상하며(대충
건너뛰며) 읽어도수학의
세계를 탐구하는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박경미의
수학N>은 수학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수 개념의 발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수학의 이슈와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파악됩니다. 먼저, 수 개념의
발생은 인류의 출현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수학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적인 유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대의 문명과 수학이
궤적을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273)는 설명도 새삼 신선합니다. 오늘날 수학이 고도로 추상화 되어 있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셈을 할 필요가 있는 현실 세계의 절실한 필요에 의해 수학이 탄생했다는 걸 상기하면 사실 수학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이와 관련하여, 상업과
교역이 활발했던 바빌로니아에서는 기하학보다는 대수학 분야가 더 큰 발전을 이루었고, 왕들의
무덤인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 우선 순위를 두었던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를
세울 때 필요한 기하학이 주로 발달했고 대수학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괴델은 불완전성의 정리를 통해 객관성을 갖는다고 간주되는 수학적 진리가 사실은 불완전한
토대 위에 서 있음을 갈파했다"(251)는 한 문장입니다. 장하석
교수님의 책이 극복할 수 없는 과학지식의
한계를 가르쳐주었다면, <박경미의 수학N>은 수학지식의 한계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철학의 힘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수학만큼
논리적이고 확실성을 담보한 세계도 없다고 믿었던(!) 제게는 진리 탐구라는 주제에 있어서 수학 지식이 지닌 한계가 과학 지식의 한계성보다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수리철학의 등장과 함께 무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수학계에 큰 충격을 준 최초의 인물은 수학자 칸토어이며, 수학계의
비난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칸토어의 이야기는 수학 지식의 한계를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수학에는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234)는 한 문장의
파장이 어마어마합니다.

최다득표제로
선출되는 선거 방식을 다시 생각하다!
<박경미의
수학N>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또 한 가지 사실은 수학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광범위하다는 것이며, 수학자들이 할 일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학교 다닐 때, 수학은 콩나물 값 계산할 정도만 알아도 사는 데 아무 지정 없다는 농담을 자주 하곤 했는데, 수학이 상거래는
물론, 건축이나 물리, 미술과 같은 학문 뿐
아니라, 혁명을 촉발시키기도 하고, 전쟁의 전략에도 중요하다는 사실이 새삼 수학자들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예를 들면, '최다득표제가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투표의 역설'(179)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의 선거 방법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최다득표제를 실시하면 지지자도
많지만 절대 비호감으로 생각하는 후보가 당선될 수도 있다는, 즉 유권자의
선호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모순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설명입니다(174-179). 수학자들이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여기서 다시 한 번! ^^
이
밖에도, 프랑스
대혁명과 미터법의 등장(일관되고
체계적인 도량형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종의 기반이었던 것이다, 163), 미국이
고수하고 있는 야드법은 우주선의 사고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는 것(소련이
미국에 앞선 이유 중의 하나가 일찍부터 미터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즉, 인치에 비해 센티미터가, 온스에 비해 그램이 더 작은
단위이기 때문에 오차를 줄였고, 그것이 기술우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68) 등도 흥미로운 읽을거리였습니다.
"수학적 지식이
발견이냐 발명이냐의 논쟁이 있는데, 이런 대안적인 기하학과 수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면에서 수학을 발명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157).
성경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히고 연구된 책으로 평가되는 책이 수학책, 즉 유클리드의
<원론>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수학이 우리 삶과 밀접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요. 워낙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서평을 쓴다기보다 정리하는 마음으로 써서 글이 길어지고 말았지만, 그래도 이 만큼 읽어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박경미의 수학N>은
수학의 대중화(?)에 실패한 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수학의 세계, 수식을 있는 그대로 그려주고 있지, 새로운 방식으로 보다 더 쉽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