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즐거움 : 윤동주처럼 시를 쓰다 쓰면서 읽는 한국명시 1
윤동주 지음, 북스테이 편집부 엮음 / 북스테이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를 읽었을 때, 시보다 시인이 더 궁금했던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시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친구가 선물해준 시낭송 테이프에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시인의 맑은 영혼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어두운 시대를 치열하게 고뇌하며 지나친 피로를 온몸으로 겪어내다 28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윤동주 시인보다 한참 어렸습니다. 지금 윤동주 시인보다 한-참 더 나이를 먹고보니 시인의 비극적인 생이 더 사뭇치게 가슴을 파고듭니다. 어릴 때 그의 시로 위로를 받았다면, 이젠 시를 읽으며 토닥토닥 그를 위로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애국 투사로서가 아니라, 그도 한 사람의 젊은이로서 말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죽음이 '일제의 생체실험' 때문이었다는 끔찍한 진실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서려 있는 피맺힌 절규가 우리 귀에 이렇게 생생한데,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다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우리는 괴로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릴 땐 좋은 시를 만나면 노트에 적어놓고 며칠이고 시를 외웠습니다. 좋은 시를 보면 베껴쓰고,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먼저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클릭 한 번이면 어디서나 시를 꺼내 읽을 수 있으니 외워야겠다는 생각을 따로 하지 않고, 한 번 긁기만 하면 문자로든 메일로든 누구에게나 시를 적어 보낼 수 있으니 따로 베껴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손만 내밀면 시를 잡을 수 있다 보니, 오히려 가슴에 시를 품은 일은 적어지고 있습니다.


<필사의 즐거움 윤동주 처럼 시를 쓰다>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적으며 윤동주의 시를 깊이 감상하도록 만들어진 필사노트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윤동주 시인의 자필 시집 제목처럼, 하늘과 바람과 별과 같이 아름답고 투명한 윤동주 시인의 대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시집이기도 합니다. 


필사를 한다는 건, 가슴에 그것을 꾹꾹 눌러 새기는 작업이기도 하고, 마음으로 깊이 그것을 음미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필사를 하다 보니, 시를 눈으로 읽고, 귀로 들을 때보다, 그것을 적어내려간 시인의 가슴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한 줄 한 줄 시를 적어내려가는 시인의 마음은 그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상상하게 되는 것이지요. 필사를 하며 시인과 교감하는 느낌이 애틋합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우리가 읽고 사랑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진실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며, 또 그를 짓눌렀던 고통은 우리의 것이기도 하고, 그의 시를 잊는다면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태워 써내려간 윤동주 시인의 시를 다시 읽으니 그는 여전히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일러주고만 싶습니다. 그리고 별과 같이 예전히 어두운 하늘을 밝히며 빛나고 있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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