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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칼릴 지브란.메리 해스켈 지음, 정은하 엮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인생이 즐거움으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인생은 소망이며 결단이다.
그대의 행복 안에
나
지극히 행복합니다.
그대에게 행복은
일종의 자유
내가 아는 모든 이들 중에서
그대는 가장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이 행복과 자유는
그대 스스로 얻어 낸 것.
생이 그대에게 늘
감미롭고 친절하기만 했을 리 없거늘
그대야말로
그대의 삶에
그토록 부드럽고 다정했던 까닭에.
1923년 1월 24일 칼릴 지브란
이 시집을 처음 읽은 것은 고등학교 때입니다.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받았던 시집입니다. 사랑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지금에 이 시집을 다시 읽으니 한창 사랑을 꿈꾸었던 시절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때의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처음엔, 시로 읽는 이 글들이 누군가의 러브레타(Love Letter)였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고, 사랑, 결혼, 속박, 자유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한 문장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지요. 주로 우정을 확인하고 친구들 간의 결속을 다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지만요. 그때 우리는 우정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우정)은 속박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배우며 나름 고뇌에 차기도 하고, 친구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갈망에 상처받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어엿한 어른(!)이 된 지금 이 시집을 다시 읽으니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문장과 같은 강도로 마음을 파고드는 한 문장이 있습니다. "이 행복과 자유는 그대 스스로 얻어낸 것. 생이 그대에게 늘 감미롭고 친절하기만 했을 리 없거늘 그대야말로 그대의 삶에 그토록 부드럽고 다정했던 까닭에"라는 문장입니다. 칼릴 지브란이라는 위대한 시인이 사랑했던 여인은 이런 생의 태도를 가졌던 사람이며, 그리하여 시인의 눈에 더 없이 행복하고 자유한 사람으로 비추었던 그녀 역시 참으로 위대해보입니다. 감미롭고 친절하기만 했을 리 없었던 날들을 여러 해 살아낸 지금, 나는 그 삶에게 부드럽고 다정했었나 돌이켜보아집니다. 그런 내공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올리며 말입니다.
칼릴 지브란은 '시'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시는 신성한 미소의 화신, 그대 눈에 고인 눈물을 말려 주는 한숨, 그대 마음속에 사는 영혼이다. 시는 그대의 마음을 먹고 그대가 품은 사랑을 마시며 그대 가슴속에서 자라난다. 그렇지 아니한 것은 거짓 구원일 뿐이다"(60). 내게도 "내 마음을 먹고 내가 품은 사랑을 마시며 내 가슴속에서 자라나는"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우리가 꿈꾸는 그런 사랑은 없다고 결론 내린 지금에도, 다음과 같은 그의 문장들은 여전히 눈부십니다. "형제들이여, 말해 보라. 그대들 중 누가 이 삶의 잠으로부터 깨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의 하얀 손가락이 잠든 그대의 영혼을 깨울 때"(32).
(여기에 수록된 글들이 칼릴 지브란의 시가 아니라는 걸 아는 지금도) 이 시집은 시를 읽는다는 것이 깊은 사색과 철학의 과정이라는 것을 처음 알려주었던 시집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정하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데도 가슴에 던져지는 질문이 있고, 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있고, 마주하게 되는 생의 진실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두고 한 번씩 꺼내 읽고 싶어지는 시집아닌 시집입니다.

형제들이여, 말해 보라.
그대들 중 누가 이 삶의 잠으로부터
깨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랑의 하얀 손가락이
잠든 그대의 영혼을 깨울 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그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
1922년 4월 28일 칼릴 지브란

단지 나는 스스로를
씨뿌린 한 겨울의 들판과 같이 느끼며
봄이 오리라는 것을 예감할 뿐이다.
더 의미 있지 않은가.
가슴속에 한 줄기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키워 나아가
마침내 승화시키는 것이.
마음속에
전혀 소망의 씨앗을
뿌리지 않는 일보다.
1911년 4월 17일 메리 해스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