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거나 천재거나 - 천재를 위한 변명, 천재론
체자레 롬브로조 지음, 김은영 옮김 / 책읽는귀족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천재성은 퇴행의 결과이다?!


광기어린 천재, 그리하여 불행했던 천재라고 하면 제일 먼저 시인 이상이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그의 등장 자체가 한국 현대문학 사상 최고의 스캔들"이라고 할 만큼 그의 작품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현대시 최고의 실험적 모더니스트이자 한국 시사 최고의 아방가르드 시인"이라고 평가를 받는 이 시인은 그의 작품만큼 파격적이고 광기어린 삶을 살다가 스물일곱 나이로 요절한 천재입니다. 우리는 시인 이상 말고도 놀라운 재능을 타고 났으나 불행하게 살다간 천재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왜 대다수의 천재들은 뛰어난 능력이 있는데도 행복하지 못했을까요? 역사에 천재적 재능과 불행한 삶이라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쳤거나 천재거나>는 바로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실증주의적 조사방법으로 천재들의 삶을 추척한 책입니다. 다시 말해, 천재들의 타고난 재능 뒤에 숨은 메커니즘을 파헤친 한 편의 거대 논문과 같은 책입니다.


<미쳤거나 천재거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논지를 펼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천재성은 퇴행의 결과라는 주장입니다. 대다수의 천재들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천재성과 함께 나타나는 다양한 병적 증상 때문이랍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면밀히 살펴보면, "선천적 정신이상 형태를 보여주는 다양한 퇴행적 징후들"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입니다. 감정적으로 냉담하거나, 도덕심 결여, 병적 우울증, 애착과 감정적인 측면에서의 뚜렷한 결함, 간질병적 증세, 충동적이고 회의적인 경향과 같은 정신적인 측면은 물론, 작은 키, 쇠약한 신체와 같은 육체적 특징에서도 천재들의 퇴행적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재성이 퇴행의 결과인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발달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발달이나 진보가 어느 한 방향으로 편중되면서 다른 쪽에서 이에 대한 보상을 치르게 된 결과라는 것입니다. "사상계의 거인들은 그들의 탁월한 지적 능력에 대한 대가로 퇴행적 특질과 정신병이 생긴 것이다"(11).


모든 천재가 정신병자라고 도식화할 수는 없겠지만, 천재라는 것이 특별한 병적 상태이며 진짜 정신이상자인 경우도 많다는 주장은 천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주기도 합니다. 천재들의 기괴한 인생 메커니즘이 부러움보다는 연민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의 이러한 유사점은 우리에게 새로운 긴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미치광이나 반미치광이들이 천재적 능력이 없는 가운데서도 대중을 열광시키고, 때로는 정치적 혁명까지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562).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러한 교훈을 남겼습니다. "최고의 불운이라고 할 광기에 대해서는 존중하는 마음을, 동시에 천재의 걸출함에 지나치게 현혹되는 것에는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563).

노희경 작가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작품을 통해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주인공은 미친 것이 아니라, 아픈 거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인 천재성은 오히려 퇴행의 결과라고 말하는 <미쳤거나 천재거나>도 역시 같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창의적인 것이냐, 미친 것이냐의 경계는 어떻게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주장은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미쳤거나 천재거나>는 역사 속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