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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상자 위의 소년 - 홀로코스트에서 피어난 기적
리언 레이슨 외 지음, 박성규 옮김 / 꿈결 / 2015년 11월
평점 :
품절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
독일의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말입니다.
아우슈비츠.
내 앞의 당면 과제가 절실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 따위는 돌아볼 여력이 없는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지나간 역사,
그것도 다른 민족의 상처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입니다.
역사는 반복해서 말해왔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말입니다.
어제는 타인의 일이었던 무차별적인
살인,
치명적인 질병,
극도의 굶주림이 언제든 나의 삶을 덮쳐올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70년이 지났지만 나치의 손에 끌려나가는 형의
모습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우리도 그토록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삶과 존엄성이
뭉개지는 야만에 언제든 내던져질 수 있다는 경고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
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맛있게 먹자!
유대 역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인터넷에 떠도는 노래라고
합니다.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은 홀로코스트의 광기 한복판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한 유대인 소년의 생생한
증언입니다.
그런데 소년의 증언은 홀로코스트의 비극와 야만성을
폭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한
사람,
'오스카 쉰들러'라는 한 나치 사업가를 역사에 새기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을 고함과 욕설 대신 이름으로 부르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었던
시절",
언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가스실에서
적어나갈지 모르는 극단적인 불한 상황 속에서 이 작고 어린 소년이 생존할 수 있었는 것은 오직 하나 그가 '쉰들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회주의자,
책략가,
용감한 독불장군,
구원자,
영웅과 상반된 별명으로 불렸던"
이 이상한 나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던 유대인 천이백여 명을 기적처럼
살려"냈습니다(147).
엄청난 위험과 뇌물과 뒷거래를 총동원하여 그들이
전쟁에서 꼭 필요한 존재라고 나치를 속였기 때문입니다.
실제 쉰들러 리스트에 오른 유대인 직원 대부분은
쓸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쉰들러는 그들이 쓸모 있는 존재로 보이게 했고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기차에서 그들을 구원해낼 수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기계를 조작하려면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가야 할 정도로 작고 어린
소년"이었던 '리언'도 끼어 있었고,
덕분에 리언은 쉰들러 리스트 최연소 생존자라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리언은 오스카 쉰들러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나는 결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
다른 모든 악조건을 능가하는 유리한 점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오스카 쉰들러가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 살아갈 기회를 주면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는 내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14).
"그 시절 어린 유대인 소년이었던 나는 매일 살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나치 쉰들러에게는 선택권이
많았다.
우릴 버려두고 돈을 들고 달아날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우릴 쥐어짜 죽을 때까지 부려 먹을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매번 목숨을 걸고 우릴
지켰다"(179).
오스카 쉰들러가 소년에게 선물한 것은 평범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삶은 "인간의 존엄"이라는 숭고한 가치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기차가 덜컹거리며 이동하는 동안 나는 수년 동안
해보지 못한 일을 시작했다.
바로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지난 6년 동안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다음 한 시간을 어떻게
버틸지,
음식 부스러기를 어떻게 구할지,
죽을 고비는 어떻게 넘길지를 고민하는
일이었다.
이제 미래라는 말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가게 될
것이다.
안전한 집에서 충분한 음식과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마음이 편안해질지도
모른다"(151).
누구도 그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어떻게 잊어야 할지 몰랐다(159)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지구상에서 한 때 가장 나약하고
연약했던 평범한 유대인들과 독일의 한 나치 사업가가 야만적인 이데올로기에 저항했던 방식입니다.
격리 지역에 수용된 뒤,
소년 리언의 어머니는 매주 금요일 저녁 기도할 수
있을 만큼의 안식일 초를 켜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 소년은 그때의 일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이 의식은 문밖에 존재하는 모욕적인 규제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확인해 주었다"(73).
또 격리 지역에 있던 랍비들은 유대교 성일에 예배를
진행했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와 부상자의 생명을 살리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게 했으며,
배우와 음악가들은 나치의 눈을 피해 가설무대를
만들어 연극과 촌극을 공연함으로 격리 지역의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문화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79)과 증언합니다.
어린 소년은 나치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어서 농담이 이해되지 않아도 무조건 웃었다고 회상합니다.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함으로써 나치의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했습니다.
"나무 상자 위의 소년"은 "영웅이란 최악의 시기에 최선을 실천하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캠벨의 말로 이 책을 마무리합니다.
유대인들은 최악의 시기에도 서로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일만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스카 쉰들러는 유대인들을 정중하게 대함으로써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었습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라는 야만의 역사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이 평범한 사람들의 작지만 위대한 저항 속에 담긴 아름다움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움 속에서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어떻게 잊어야 할지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