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산티아고
한효정 지음 / 푸른향기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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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발로 그 길을 걸었지만,

그것은 내면으로의 순례여행기도 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생장드피드포르에서부터 피니스테라까지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걸었다는 900킬로미터의 순례의 길, 카미노 데 산티아고.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들이 그 길 위를 걷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속죄하기 위해, 누군가를 의미를 찾기 위해, 누군가를 답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을 비우기 위해 찾는다는 그 순례의 길.

 

대장암 수술, 이혼, 사업실패라는 삶의 격랑에 휩쓸리던 저자도 산티아고 순례의 길을 찾았습니다. "항복하는 대신 실패한 지점에다 출발선을 죽 긋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답니다(7). <지금 여기, 산티아고>는 그 뜨거웠던 40일간의 여정과 그 이후를 일기처럼 기록한 책입니다. 사진과 글이 예뻐서 멀리서 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읽듯, 푹 빠져 읽었습니다.

 

<지금 여기,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정보보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10킬로그램의 배낭을 짊어진 채 낯설고 고된 길 위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걷는 순례의 길은 타인을 통해 나를 더 정밀하게 들여다 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하며 삶의 무게를 이겨나가는 저자를 지켜보며 사람이 주는 위안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낄 수 있었고, 나의 길을 가는 동안에도 이처럼 좋은 길동무를 만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소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도전이 되고 인상 깊었던 것은 다소 엉뚱하게도 저자의 외국어능력(영어)이었습니다. 순례길에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끼도 함께 걸으며 쉽게 친구가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언어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감과 이해일지도 모릅니다. "신은 언어로써 인간을 갈라놓고, 공감과 이해라는 더 큰 언어를 선물로 주신 것이 틀림없다"(72). 그러나 저자가 이처럼 예쁘고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를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영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유창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예쁜 책을 읽으며 다소 건조한 감상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산티아고가 나에게는 '현실'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준다면 2016년 어느 날, 저도 산티아고 길 위를 걷고 있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먼 곳까지 뭐하러 사서 고생을 하러 가느냐고 의아해하지만, <지금 여기, 산티아고>는 그 고된 40일 간의 여정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습니다.

 

데카르트는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좋은 친구를 얻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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