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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탄생 - 건축으로 만나는 유럽 최고의 미술관
함혜리 글.사진 / 컬처그라퍼 / 2015년 8월
평점 :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22곳을 돌아보는 미술관 건축기행!
가슴을 벅차게 하는 아름다움을 대할 때면 '누미노제'라는 철학용어가 떠오릅니다. 신을 경험하는 압도적 경외감을 표현하기 위해 독일 철학자 R. 오토가 만들어낸 용어인데, 아름다움에 압도 당하는 그 순간이 마치 신을 마주한 듯한 전율과 신비를 선물해주기 때문일 겁니다. "건축으로 만나는 유럽 최고이 미술관"이라는 부제가 달린 <미술관의 탄생>을 읽으며 내내 그 '누미노제' 감정을 떠올렸습니다. <미술관의 탄생>은 세계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인류 문명의 보고인 미술관(박물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임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저자를 따라 미술관 한 곳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마치 경건한 예배당에 들어선 듯 신비하고 장엄한 아름다움에 압도 당하곤 했습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친구들마다 유명한 미술관(박물관) 한두곳 쯤 방문하지 않은 친구가 없고, 또 유럽은 어디를 가나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꼭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은 친구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술관의 탄생>은 미술관이 품고 있는 예술작품에서 잠시 눈을 떼어 그것을 품고 있는 미술관(박물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19세기 들어 본격적인 박물관이나 미술관 용도의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설계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에게 맡기는 게 전통으로 굳어졌"(5)다고 하는데, 이렇게 세계적인 거장 건축가들이 예술적 영감을 발휘하여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건축된 미술관(박물관)은 그 시대의 예술과 건축을 대변합니다. 공학적 기술과 시각 예술의 접점이 시도된 미술관(박물관) 자체를 감상하는 것도 유럽을 여행하는 또다른 테마, 훌륭한 테마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미술관의 탄생>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22곳으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많은 경우 유럽의 미술관들은 왕실의 소장품이나 귀족들의 소장품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왕족이나 귀족들, 즉 소수 특권층만이 독점하던 전시 공간이 시민의 공간으로 변화하고, 본격적인 의미의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1789년 흐랑스 대혁명 이후라고 합니다(5, 58). 이후 많은 나라들이 프랑스의 모범을 따랐는데, 1753년 영국의회도 박물관 설립을 인준하면서 '보편성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16)고 하니, 유럽의 미술관(박물관)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상징이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갖게 해주었습니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풍경을 바꾸다!
<미술관의 탄생>을 읽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흉물이 된 발전소, 폐허가 되었던 기차역, 검은 황금을 캐던 탄광촌의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의 경우 오랫동안 폐허로 방치되어 인적이 끊어진 발전소 주변은 우범 지역으로 전락했는데, 한 사람의 혜안과 용기(데이트 미술관 그룹 총관장인 니컬러스 세로타)가 폐쇄된 발전소 건물을 도시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의 장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저자의 평가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개관 이래 테이트 모던을 찾은 관람객은 4천만 명이 넘는다. 테이트 모던이 창출하는 경제 효과가 연간 1억 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테이트 모던 측은 분석하고 있다. 경제적 효과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관람객의 65%가 런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발전소가 전기를 공급했듯이 이제 테이트 모던은 런던 시민들에게 예술을 공급하는 매력적인 장소가 됐다. 우범 지역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몇 해 전부터는 강 건너편에서 이전해 오는 금융회사들도 생겼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풍경을 바꾼 셈이다"(33).
<미술관의 탄생>은 잘 지어진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풍경뿐 아니라, 도시의 역사, 나라의 위상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으로 평가받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일부러 찾아가기엔 접근성도 좋지 않은 스페인 북부 지방의 소도시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쇠퇴한 공업도시였던 빌바오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미술관 하나가 "문화적 랜드마크로서 빌바오를 세계 지도 위에 올려놓았다"(43)을 뿐만 아니라, '빌바오 효과'라는 단어까지 만들 내며 전 세계 도시재생프로젝트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41).
속죄와 참회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사죄하는 독일의 상징 '홀로코스트 추모공원'도 감동이었지만, 책을 덮으며 잊혀지지 않는 장면 하나는 테이트 모던의 터빈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모습입니다. 엄숙해야 하고 질서를 지켜야 하는 미술관의 분위기가 아니라, 마치 놀이터에 나온 듯한 아이들의 자유롭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아무도 제재하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 충격적일 만큼 신선했습니다. <미술관의 탄생>은 어떤 나라는 박물관이 나라의 역사를 대변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는 것, 또 기념비적 건축물 하나가 그 도시를 세계적인 도시이자 명실상부한 세계의 문화수도로 개조할 수 있다는 것, 박물관 건물 하나가 나라를 상징하는 아이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만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무미건조한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참으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혜안과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예술과 건축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생활 철학이 먼저 문화강국으로 거듭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대하는 엄숙함과 과감한 낭비(투자), 더불어 그것을 즐기고 누릴 줄 아는 자유함과 여유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