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 2
조지 오웰 지음, 박유진 옮김, 박경서 / 코너스톤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1948 …  1984 …  2015




"미래에게, 과거에게 또는 사람들이 각자 다르고 홀로 살지 않으며 사상이 자유로운 시대에게, 진실이 존재하고 일어났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는 시대에게, 획일성의 시대로부터, 고독의 시대로부터, 빅 브라더의 시대로부터, 이중사고의 시대로부터… 안부를!"(42)


가장 위대한 20세기 영미소설 중 하나로 손꼽히며 전세계 젊은이들의 필독서라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제 개인의 별점이 무의미한 작품입니다. 역사가, 세대를 초월한 전세계의 독자가 이미 그 가치를 인정한 작품이니까요. 아마도 한 사람의 독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평가는 '코너스톤 세계문학 컬렉션'으로 읽어본 <1984>는 번역이 매끄럽다 정도일 겁니다. 다만, "역사적 진보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시대"라는 20세기 전반기의 암울한 정치 상황 속에서(1948년) 미래 시대의 고도관리사회를 상정하여(1984년) 미래와 소통하고자 했던 조지 오웰에게 응답해야 할 미래 세대가, 2015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가 아닐까 하는 어떤 시대적 사명감 같은 것이 강하게 밀려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는 아무도 듣지 않는 진실을 말하는 외로운 유령이었다"(41).


조지 오웰의 <1984>는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 책의 해설을 맡은 이는 "유토피아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이상향'이라 한다면, '디스토피아'는 인류가 현재로부터 예견해 볼 수 있는 최악의 미래가 되는 셈"인데, "디스토피아 문학은 현대인의 무력감과 절망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417). 그래서인지 단순히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이 책을 읽으려 해도, 마치 이 책에 등장하는 '윈스터'와 같이 전체주의와 외로운 사투를 벌이듯 이 작품을 써내려간 작가 오웰의 깊은 절망감 속에 우리의 현실이 자꾸 겹쳐지는 것은 '헬조선'이라 명명된 우리 시대의 무력감과 절망감이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윈스턴은 자신이 괴물이 된 채 괴물 같은 세상에서 길을 잃고 해저 수풀을 헤매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혼자였다. 과거는 죽었고, 미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40).


1984년 십대였던 저는 언니, 오빠들의 피끓는 투쟁을 보며 자랐습니다. 데모대들의 격렬한 저항과 잔혹한 진압 이야기를 보고 들었고, 어떤 날은 지독한 체류탄 가스 때문에 수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갔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정의와 이상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그 투쟁을 이어받은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저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가면 우리 삶은 어떻게 바뀔까 상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헬조선'이라는 지옥을 만들어내고, 20대들을 빚쟁이로 만들어 사회에 첫발을 딛게 하는, 출발부터 금수저 흙수저의 불평등을 나눠주는, 어른들, 책임자들은 도대체 누구일까요? 가끔 그때 데모를 했던 선배, 그리고 친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처럼 분명 우리도 어른들의 불의와 불평등과 불합리에 항거했던 젊은이들이었는데, 그랬던 세대가 지금 '헬조선'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희망이라곤 아무도 듣지 않는 진실일지언정 조지 오엘처럼 포기하지 않고 분개하는 한 사람의 '외로운 유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저들은 정말 중요한 문제에 저렇게 고함치지 않는 걸까?"(96)

 

(해설자의 정리를 빌리자면) 오웰은 아 직픔을 통해 전체주의자들이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통치 수단을 폭노하는데, 첫 번째는 과거 통제, 두 번째는 이중사고, 세 번째는 '2분 증오'라는 이데올로기 주입 교육, 네 번째는 사고의 영역을 줄이기 위한 '신어' 창조입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역사교과서 논란처럼) 과거 통제를 위해 기록은 파기되고, 진실은 위조되고, 역사는 조작되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해 먹을 수 있는 원시적 애국심을 부추기고, 사상경찰들이 모든 사람을 온종일 감시하며, 고문과 모욕으로 반박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파괴하는 통치 수단들이 단순히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것을 보면, 이 책을 더 열심히 읽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에 취한 자들인가 봅니다. 


<1984>의 주인공은 희망은 '프롤'(프롤레타리아)에게 있다고 믿지만, 통치 권력을 공고히 하는 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빈곤과 무지 안에 갇힌 프롤은 자신의 힘을 때닫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전반적인 이념이 없으니 사소한 불평거리에만 집중하고,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깊이 생각하고자 하는 의욕도 능력도 없는 한 그저 휑하고 음침하고 무기력한 채 빈곤과 무지에 갇혀 지낼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윈스턴과 같은 인간의 본성을 지키려고 하는 의식 있는 젊은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사적 사유 체계가 완전히 말살된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 사회를 보여준다"(430).


이 책을 읽어보면 권력을 쥐고 있고, 권력에 취한 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들이 사고하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정치적 투쟁은 '과거에 대한 기억 찾기'와 '일기 쓰기'부터 시작됩니다. 어쩌면 이런 몸부림이 아무런 정치적 힘을 가지지 못하고, 무기력해보일지라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어야 합니다. 뱃속에서부터 당연히 누려야 할 어떤 권리를 빼앗겼다는 느낌이 든다면, "삶이란 건 언제나 이 모양이었나? 음식은 언제나 이런 맛이었나?"(83)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분개한 마음으로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이 세대에게, 무기력에 사로잡힌 이 세대에게, 빈곤과 무지에 갇힌 이 세대에게 이 작품은 생각해야 한다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써야 한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외치는 듯합니다.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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