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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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명이 죽었다"(594).


도대체 그날 그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었던 것일까? 폰더 부인은 피리위 초등학교 학부모가 참석하는 퀴즈의 밤 행사에서 온갖 욕설과 욕두문자가 날아다니고, 미친 듯한 고함소리가 서늘한 밤하늘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목격합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멀리서 사이렌 소리와 여인의 비명이 동시에 들려왔습니다. 그날 밤, 병원에 실려온 피리위 초등학교 학부모 가운데 한 명은 발목이 부러졌고, 한 명은 쇄골이 부러졌고, 한 명은 코가 부러졌고, 한 명은 갈비뼈에 금이 갔고, 세 명이 눈에 멍이 들었고, 두 명이 심하게 찢어져서 꿰매야 했고, 아흔 네 명이 머리가 빠개질 정도로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이 죽었습니다(594).



 

"모두 끔찍한 오해였을 뿐이에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고 결국 모든 게 걷잡을 수 없게 됐어요. 세상일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요. 갈등은 모두 누군가의 마음이 다치는 걸로 시작해요"(10).


폰더 부인의 목격담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퀴즈 대회의 밤 6개월 전으로 돌아갑니다. 6개월 전, 마흔 살의 매들린과 스물네 살의 제인은 피리위 초등학교 예비학교 학부모로 만나 인연을 맺습니다. 거침없는 성격의 매들린은 어딘가 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싱글맘 제인에게 끌립니다. 제인을 보면 재혼 전,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던 싱글맘의 외로움과 아픔이 절로 떠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날 이후로, 매들린과 제인, 그리고 아름다운데다 부자 남편까지 남부러울 것 없는 매들린의 친구 셀레스트까지 셋은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이 세 여인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퀴즈의 밤 행사에서 벌어진 난동을 미스테리하게 독자들에게 던져준 뒤, 행사에 참석한 학부모들의 경찰진술, 그리고 세 여인(매들린, 제인, 셀레스트)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독자가 맞춰나갈 퍼즐을 하나씩 내어놓습니다. 도대체 그날 밤 난동은 왜 일어난 것인지,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증만 계속 증폭되는 가운데 그날 밤 사건은 도무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을 거의 다 읽어갈 때까지 그날 밤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아니 그 죽음이 살인사건이었는지 사고였는지조차 밝혀지지 않은 채 작가와 독자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벌어집니다.




폭력과 상처, 그리고 여자 (스포주의!)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의 키워드는 '거짓말'이 아니라 '폭력'과 '상'처, 그리고' 여자'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은 여성학 수업 독서토론 도서로도 안성맞춤일 듯합니다. 현대 여성을 둘러싼 사회 문제가 이 한 권에 다 집약되어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이혼과 재혼, 그리고 재혼가정의 문제, 싱글맘, 비밀스러운 가족폭력, 강간, 학부모 노릇과 전업주부의 자격지심, 불륜, 외모 트라우마까지 전방위 여성문제를 다룹니다. 많은 말을 쏟아내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표 드라마처럼 작가 '리안 모리아티'는 전작 <허즈번드 시크릿>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엄청난 양의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그녀의 수다본능이 힘겹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섬세한 심리묘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재혼한 전남편의 가정과 부딪히며 느끼게 되는 매들린의 복잡한 감정선, 은밀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셀레스트의 다중적인 심리, 어린 나이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제인의 중첩되는 고통까지 여성들의 심리묘사에 아주 탁월한 작가입니다. 


더불어 여성을 둘러싼 사회환경과 사회문제까지 더해져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합니다. 독자를 가르치려는 듯 대놓고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스토리와 맛깔스러운 대사 속에 암시적으로 다가옵니다. 예를 들면, "학부모라는 역할을 아주 강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야. 무슨 종교처럼 말이야", "여자의 자부심은 전적으로 외모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게 이유예요. 우린 외모지상주의에 사로잡힌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남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느냐 아니냐인 세상요", "그 망할 유능한 안내한테 열등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연봉도 엄청나고 중요한 데 나가잖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사실은 내가 학교에 가는 것과 같은 거였어? 세상에, 그런 생각은 정말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데"와 같은 문장들입니다. 아이의 가계도 숙제를 둘러싼 다음과 같은 대화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저런, 지기야. 아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정말 많단다." 매들린이 말했다. 세상에, 아마도 정말 그럴 거다. 피리위 반도에만 해도 싱글맘이 정말 많다. 아무래도 내일 반스 선생님을 만나봐야겠다. 이런 바보 같은 숙제는 더는 내지 말라고 해야 해. 지금 같은 세상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고 깨진 가족을 말쑥한 작은 상자에 구겨넣으려 하다니, 말이나 되는 얘기야?"(263)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은 매들린, 제인, 셀레스트라는 세 여성을 둘러싼 상처와 비밀을 중심으로 사소한 논쟁이 어떻게 잔혹한 폭력으로 발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리즈 위더스푼과 니콜 키드먼 제작 주연의 미드 방영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니콜 키드먼이 맡은 배역이 궁금해집니다. 거침없는 성격의 매들린 역에도 잘 어울리겠지만,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셀레스트와도 잘 어울려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시대를 지향하는 21세기를 살고 있어도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일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고 희생을 강요 당하는 삶을 살기도 합니다. 책의 어느 부분에선가 매들린이 "내 문제는 잘 풀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남의 문제는 답이 훤히 보인다"는 말을 합니다. 실제로 매들린이 끙끙 앓게 되는 난제를 셀레스트가 한방에 해결해주기도 하고, 제인을 멘붕에 빠뜨린 문제를 매들린이 거뜬히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문제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책을 읽어가며 매들린과 제인과 셀레스트에게 남몰래 조언을 하다보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내 문제에 대한 답이 어느 순간 훤히 보일지도 모르니까요. 6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지루할 틈이 없는 촘촘한 소설입니다.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데, 한발 더 나아가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면 다각도에서 보다 의미 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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