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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병 - 가장 가깝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우리 시대의 가족을 다시 생각하다
시모주 아키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2015년 7월
평점 :
자녀들에게 가장 큰 상처와 아픔을 주는 사람은 부모?
2008년 한 기관에서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자신의 삶에 가장 큰 고통을 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 중 39.2%가 자신의 부모를 꼽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가족 관계 안에서 최악의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또 가족 안에서 은밀히 자행된 범죄로 평생을 씻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까운 만큼 증오심이 불거지기 시작하면 남들보다 두 배, 세 배로 불어나고 끝내는 용서할 수 없어 극단적인 형태를 띠게"(28) 되는 것이 가족관계요, 가족갈등입니다. 개인이 체감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신성시 하고 있는 가족신화, 국가와 매체에 의해 더욱 견고해지는 가족이데올로기에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나는 오래도록 내게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이란 무엇일까, 또 인간 전체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품어왔다"(7-8). 저자는 한 명 한 명의 생각이나 자신과의 차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가족이라는 틀, 개인의 희생과 불행을 담보로 지켜지는 가족이라는 틀, 개인을 먹이삼아 숨을 쉬는 가족이라는 거대한 생물을 거부합니다. "왜 너는 가족을 스스로 거부했을까. 가족이라는 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을 깨달았기 때문이야.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를 보호하는 관계와 안이한 감정에 잠겨 위로를 찾는 그 거짓됨을 못 본 척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지"(230).
가족이라는 단위를 싫어하고, 가족을 거부하는 여자. 이 여자의 뿌리에는 불행했던 가족사가 존재합니다. 아버지 이해하는 걸 거부하고, 딸을 위해 사는 어머니가 불편했던 딸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가족에게 기대하지 말라, 기대는 자신에게 하는 것이다. 가족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말라, 환상이 클수록 어이없이 무너지고 만다. 남편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호칭을 거부하라, 반려나 파트너라는 호칭이 좋다. 가족에게 버려져야 평안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 꼭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다. 자식을 핑계로 참고 살지 말라, 이혼 후 새출발한 사례도 많다. 나의 DNA를 물려받은 자식에 집착하지 말라, 피가 섞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한 가족이 탄생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폭력, 가족이란 이름으로 강매되는 행복을 거부한다,"
<가족이라는 병>은 페미니즘 시각에서 일본적 상황에서 현대 가족의 함의를 논하고 있지만, 가족사회학이나 여성학보다는 개인 에세이적인 성격이 더 강한 책입니다. 저자와 같은 페미니즘적 성향에 대한 반응은 보통 2가지로 나타납니다. 상처로 똘똘뭉친 열등덩어리로 치부하거나, 시대를 앞서가는 자각한 여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그것입니다. <가족이라는 병>도 그렇게 평가가 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자와도 실제 타인처럼 생활한다는 저자의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갖거나, 혹여 가족이데올로기가 흔들릴까 우려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몇 가지 화두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고령 부모를 모시거나 간호하는 일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관리자의 편의에 맞춰진 시설의 운영방식이라든가, 고령 부모의 간호를 떠맡게 되는 여성(직장까지 그만 두어야 하는) 문제는 남의 나라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 육아 환경에 대한 개선이나 불임여성을 위한 법적, 제도적 배려가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아라"고만 강요하는 국가 정책의 가혹함도 반성해볼 일입니다.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국가의 사정에 따라" 중구난방식 정책을 강요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도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가꾸고, 행복한 가정 안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스리기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족" 단위를 강조하고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가족을 거부하고, 남편(파트너)과도 타인이나 다름 없는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저자를 향해 "삐뚫어진 페미니즘"이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족이 소중하다고 외치는 우리 자신은 가족을 이해하기 위해, 가족과의 진실한 소통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를 먼저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가족의 붕괴는 마음의 소통이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잃어가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