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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기차 안에서 타인의 삶을 지켜보다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여자!
같은 열차, 같은 버스, 같은 비행기에 탔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의 운명에 처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 홀로 여행지만 낯선 사람들과 같은 풍경을 공유하기도 하고, 느닷없는 사고로 같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말입니다. <걸 온 더 트레인>은 톰과 이혼한 '레이첼', 톰의 이웃에 살고 있는 '메건', 그리고 톰과 재혼한 '애나'가, 마치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한 기차를 탄 승객처럼 서로의 인생에 얽혀들며 감추어진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레이첼, 그렇게 오랫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이해가 안 돼."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아침에 8시 4분 기차로 갔다가, 저녁에 17시 56분 기차로 돌아와.
내 기차들이야. 내가 타고 다니는 기차. 이런 식이지 뭐"(228).
레이첼은 매일 통근 기차를 타고 런던을 오가며 무의미한 기차 여행을 계속합니다. 그녀는 간절히 원했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알코올 중독이 됐고, 바람 난 남편과 이혼을 했고, 술 때문에 직장에서도 짤렸고, 얹혀 사는 친구에게 실직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해 매일 출근하는 척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차는 매번 같은 곳에서 멈춰 서고, "기차가 정지 신호를 받고 멈춰 서면 레이첼이 좋아하는 기찻길 옆 집, 15호가 완벽하게" 보입니다(15). 그녀는 "블레넘 로 23호에서 전 남편 톰과 더없이 행복하고 아주 끔찍한 5년"(18)을 보냈기 때문에, 거기서 네 집 건너에 있는 15호를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기차가 정지 신호에 묶여 있는 사이 15호에 사는 한 쌍의 커플을 은밀히 지켜보는 것이 어느 새 레이첼의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제이슨'과 '제스'라는 가상의 이름까지 지어주며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이첼은 기차 안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이후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제스'이라 이름 붙인 '메건'이 '제이슨'(설제 이름은 스콧)이 아닌 다른 남자와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때 불쑥 남편의 불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날이 떠오르고, 레이첼은 제스(실제는 메건)를 향한 강렬한 분노에 사로잡힙니다. "지금 제스가 내 눈앞에 있다면, 그녀가 보인다면,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어주리라. 그녀의 눈알을 할퀴어주리라"(52).
그녀는 술을 진탕 마시고 제이슨(스콧)의 삶이 거짓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무작정 기차를 탔고, 다음 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깨어납니다. 레이첼은 끔직한 몰골로 상처 입은 채 깨어난 자신을 보고 지난 밤 무슨 일인가 아주 나쁜 일이,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직감하고 검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바로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제스(메건)가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게 됩니다.
"카말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전율이 느껴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게 그 사람으로부터 시작됐으니까.
그를 한 번 언뜻 보는 바람에 내 인생은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269).
천천히 역을 출발하는 기차처럼 시작된 이야기는, 기차 안에서 레이첼이 메건의 불륜을 목격하고부터는 알 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합니다. 레이첼을 중심으로 애나와 매건이 교차하며 화자로 등장하는데, 세 사람의 이야기가 조각모음을 하듯 한 자리에 모여지며 모숩을 드러내는 진실은 예상했던 방향과 정반대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탄 것처럼 독자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착역으로 데려갑니다.
스포 때문에 조심스러워서 더 깊은 이야기를 이곳에 쓸 수는 없지만, 초반에 주인공 레이첼이 좀 짜증나더라도 참아주시기 바랍니다. 식스센스 급 반전이 그녀를 덮칠 때, 그녀에게 짜증을 냈던 것이 몹시 미안해질테니까요. 이 책에 쏟아진 찬사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감동은 없지만, 몰입도는 최고인 소설입니다. 진실을 모두 알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