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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로 만나다 ㅣ 아름답다! 우리 옛 그림 4
윤진영 지음 / 다섯수레 / 2015년 7월
평점 :
"풍속화는 옛날로 돌아가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과 풍물이 있는 그림이다"(서문 中에서).
이 책은 아버지에게 선물할 책입니다. 옛것을 좋아하시고, 옛 이야기를 좋아하시고, 옛 그림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에게 아주 좋은 선물이 될 듯합니다. 아버지가 더 좋아하시는 건 진경산수화 같은 그림이지만, 옛 이야기가 있는 이 책에 풍덩 빠져드실 거라 확신합니다. '그림 읽어주는 여자' 이후 그림을 읽어주는 책들이 꽤 출판되어 나왔고, 지금도 나오고 있지만, 서양의 명화를 읽어주는 책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이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전에 '가족사회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그림을 통해 '아동의 역사'를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폭의 그림이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우쳤던 것 같습니다. 아동의 모습이 통통한지 원숭이를 닮았는지, 그림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를 통해 시대별로 아동이 어떻게 인식되어졌고, 어떤 일을 했으며, 어떤 지위를 누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삶, 풍속화를 만나다>에서도 그런 재미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형상을 보전하는 데 더없이 좋은 것은 없다"는 고전 속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풍속화의 가치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문자 기록으로 대신할 수 없는 실존의 모습들은 풍속화를 통해 세상에 전해지고 거듭날 수 있게 된다"(서문 中에서). 이 책은 "비교적 풍부한 그림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풍속화를 다루고 있"으며, 풍속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을 기준으로 하여 관인 풍속화, 사인 풍속화, 서민 풍속화로 분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조선전반기의 풍속화라 할 관인 풍속화와 사인 풍속화에 조금 더 비중을 두었다"고 밝힙니다. 저자는 이것이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를 들여다보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동안 접할 수 있었던 조선풍속화라고 하면 김홍도와 신윤복의 것이 많았고, 또 대부분 화가의 천재성이 무게를 두거나, 혹은 그림 안에 담긴 놀라운 과학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확실히 차별적입니다. '풍속화'라는 프레임을 통해 조선사회의 삶과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조선풍속화는, 어떤 그림들은 사진기자의 눈으로 본 장면 같고, 어떤 그림들은 은밀한 그림일기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왕의 행차나 연회, 행사 장면을 기록한 관인 풍속화는 마치 사진기자가 사건을 보도하듯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 속에서도 구석구석까기 날카롭게 살피는 시선이 흥미로웠고, 특별한 만남이나 일생의 가장 중요한 장면을 담은 사인 풍속화는 일일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으며,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그린 생동감 넘치는 서민 풍속화는 다른 사람의 그림일기를 엿보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그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관인 풍속화에는 가끔 기녀나 무녀 외에 여인이나 아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반면, 서인 풍속화에는 나물을 캐거나 바느질을 하는 노동하는 여인이 그림의 주제로 등장하거나 아동이 일하는 어른 가까이 있는 것도 제 나름 흥미로운 관찰 중에 하나였습니다.
이 책을 보며 느낀 점은 풍속화는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말이나 글보다 한 장의 그림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암호를 풀어가듯 그림 속에 숨겨진 사연을 알아가는 것도 무척 재밌는 독서였습니다. 이렇게 그림으로 우리 풍속과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고려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