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즐겨 있는 작가라도 있나?"(33)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은 작가지망생 아널드 새뮤얼슨이 헤밍웨이와 보낸 1년의 기록입니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횡단여행>을 읽고 그의 작품에 빠져든 아널드 새뮤얼슨은 길바닥에서 차편을 구걸해가며 미니애폴리스에서 3200여 킬로미터를 여행하며 무작정 키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를 찾아갑니다. 단지 자신의 소설에 반해 그와 이야기를 좀 나눠볼 수 있을까 하고 무작정 그를 찾아나선, 부랑자나 다름 없는 모습으로 그의 앞에 선 한 청년에게 헤밍웨이는 단번에 호감(!)을 느낍니다.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해가며 그가 헤밍웨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도우며 자연스럽게 우정을 쌓아갑니다. 


삶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을 '스승'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33세의 나이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는 12명의 제자 외에는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그 12명의 제자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고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했으며, 삶으로 그들을 가르쳤습니다.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을 읽으며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떠올랐던 건, 헤밍웨이가 삶으로 아늘드 새뮤얼슨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작정하고 덤벼든 본격적인 '작가 수업'이라기보다 대문호가 삶으로 가르치는 작가 수업입니다. 대문호의 삶 속으로 풍덩 뛰어든 한 작가지망생의 눈을 통해 우리는 헤밍웨이의 성격, 취미, 글 쓰는 법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이나 습관 등을 날 것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대문호 헤밍웨이에게 직접 듣는 작가 수업이었는데, 그보다는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또는 에세이)로 읽힌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작가 수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알고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것, 잘라버릴 만한 건 모조리 잘라버리라는 것, 소질만 있으면 언제든지 드러나기 마련이니 꾸준히 쓰라는 것, 좋은 작품은 몽땅 읽어두라는 것 등 실제적인 조언도 많고,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은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으며, 언제 쓴 것보다 나아야 하니 잘 쓸수록 힘들어진다는 것, 단편 열 개를 써봤자 그중 하나 정도만 쓸 만한 뿐 나머지 아홉은 버린다는 것, 글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지독한 무력감에 빠져 든다는 것 등 작가로서의 헤밍웨이의 고충도 엿볼 수 있으며, 살아오면서 누구의 입맛에 맞게 글을 써 본 적이 없으며, 소박한 낱말들이 언제나 최선이라는 헤밍웨이의 소신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헤밍웨이의 거침 없는 성격과 바다를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었습니다. 이 책은 헤밍웨이라는 대문호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그를 보다 더 가까이에서 알고 싶은 독자에게 더 환영받는 책일 듯합니다. 헤밍웨이에게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문학 점수는 늘 형편 없었다는 아널드 새뮤얼슨에게 "좋은 징조군. 대학에서 학점을 잘 따는 친구들은 대개 흉내쟁이들이지. 자기만의 것을 쓰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그럴 가망도 없고"(28)라고 거침 없이 말하는 그에게 푹 빠져 이 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한 20세기 대표작가"이자, 우울증과 알코올중독증에 시달리다 어느 날 아침 엽총의 총구를 입에 문 채 방아쇠를 당겨 자살로 생을 마감한 헤밍웨이는 내 머릿속에 다소 비극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로 각인된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이었으며 얼마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보는 눈이 달라지면 그의 작품이 주는 의미도 달라지곤 하는데,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